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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Mar 12. 2017

먹구름

청보리밭을 걸으며



이따금씩 먹구름이 몰려온다. 나의 의도나 바람과는 상관이 없이 그저 몰려올 때가 된 것뿐이다.


싱그러운 들판,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살랑이는 바람만 계속되는 날이면 좋겠지만 좀처럼 쉽진 않다.
삶은 그렇게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이따금 먹구름이 잔뜩 밀려오게 만든다.




한참이나 즐거운 때를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왜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를 한참이나 고민했다.

오랜 고민에도 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답이 없으니 다시 기분을 올려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스위치를 켜듯 즉각적으로 되는 문제는 아니다. 한동안 떨어진 감정을 주워 담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감정은 그럴수록 더 깊은 곳으로 주저앉았다. 그럴수록 자신의 감정 하나 어찌하지 하지 못하는, 통제 불가능한 정신상 태라는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지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저 먹구름이 지나고 나면, 퍼붓는 비를 머금고 내일 더 자라나게 될 것이다.
성장하는데 때론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법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향의 청보리밭을 거닐며 여러 번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어쩌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해야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감정을 어찌해보려 노력하기보다 그저 가만히 두고 그것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숱한 자괴감과 무력감도 내리는 폭우에 씻겨 함께 흘러가고 새로운 기분으로 성장한 내일을 맞이 했을 것이다.

나나 당신의 앞날에 이유 없는 우울감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 이유도 없고,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겨내고 하루를 더 살아가면, 그 폭풍이 지나간 뒤 우리는 더욱 성장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간의 삶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건 이런 이유였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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