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Mar 31. 2017

푸른 자살

푸르던 날의 기억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오랫동안 찾아다녔는데, 부탁했던 책방 주인으로부터 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달음에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한눈에 봐도 낡아버린 모습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책 상태는 제법 양호했다. 오래전 읽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책. 못내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열어 훑어보는데 책 사이로 붉은 잎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과 검은 글자 사이 인상적인 붉음이 머물러 있었다.


늦은 가을 인상적인 빛깔이 가득했을 오후의 한 복판 어디선가.

아마 그런 날 주워왔을 낙엽 하나가 책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예전에는 종종 책갈피 대신 이런 낙엽들을 끼워두곤 했었지.' 

옛 기억 하나가 아련히 떠올랐다. 요즘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그 시절만의 감성이다.




싱그러웠을 빛깔은 세월의 찬바람에 붉게 물들고, 이윽고 갈색으로 퇴색해버리는 하나의 순환. 

붉은 빛깔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순환에 갇혀 푸르던 날을 그리어하며 터뜨리는 울음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붉은 울음을 터뜨리며 온몸을 물들이다가 푸르름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나면, 조용히 자신을 떨구며 푸른 자살을 자행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느 정도의 붉은 빛깔을 내는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직은 푸른 빛깔 감도는 사람인 것일까? 

아니면 완전히 퇴색되어 푸른 자살을 준비하며 낙하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푸르던 날을 그리워하며 더욱 붉게 세월의 찬바람에 몸이 세 해버린 시간들을 온몸으로 서럽게 받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토록 지금의 내가 공허하고 서럽게도 외로운 것일까? 

버틸 수 없는 우울감만이 점철되어 누군가 내게 지금 당장 종언을 내려주길 기다리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지금 내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 것인지 몰라도,

지나버린 푸르름이 아쉽지 않도록 아름다운 붉은 빛깔로 물들이며 살고 싶다.

어느 틈에 어디선가, 어떤 시간에라도 나의 붉음이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살고 싶다.

붉음이 불처럼 달아올라 나의 피부와 뼈를 태우고, 모든 것을 잿빛으로 바스러지게 만들지라도 가장 인상적인 시간을 강렬하게 남기고 싶다. 어느 하나 알아주는이 없다고 하더라도.


망설임 없이 더욱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끊임없이 나를 이야기하고 모든 것을 마주하고 싶다.

그것이 그림일지, 글일지, 생각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야만 붉은 울음을 멈추는 날, 푸른 자살을 끝마치고 잿빛으로 퇴색되어 끝내 소리 없이 낙하하여, 바스러질 때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Fix yo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