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Apr 03. 2017

바람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왜 그런 것까지 쓰고 그러냐.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냐.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어떨지 아느냐.


지금의 내 모습이 그토록 마음이 쓰이고 끔찍하다면, 그냥 눈을 감고 보지 않으면 된다.


나는 어느 순간 당신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고 살아가고 있다. 뜬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지만, 피사체가 어긋난 듯 다른 곳에 시선이 머물며 외면한다. 당신을 바라보면 언제나 가슴이 아파오고 마음이 저며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당신을 내가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도 나를 가슴 깊이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당신이다. 


20살에 나를 낳아 어머니가 되어버린 당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경험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신나고 즐거운 것이 가득한데, 당신은 나와 동생에게 갇혀 삶이 메이는 것에 좌절했을지 모른다. 


당신이 늘 가지고 있던 분노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일으키던 매일의 고성과 숱한 다툼.

그 모든 것이 당신이 바라고 꿈꾸던 삶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며, 이 역시 당신의 삶에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당신도 수많은 좌절에 부딪혔을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 역시 세상을 처음 살아가며 그런 경험을 해야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의 부재. 매일 술을 마시고 싸우던 모습. 부서진 잔해와 박살난 삶을 매일 경험해 보야만 세상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당신의 존재를 늘 그리워했다. 그렇게 어딘가 결핍된 아이로 자라났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당신을 바라보면 언제나 가슴이 아파오고 마음이 저며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머무는 시선의 한 구석에는 늘 어릴 적의 내 모습이 고여있다.


나의 사랑 없이도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의 이유가 절대로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럼 당신도 나도 서로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이런 모습에서까지 굳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에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런 말들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남들의 눈에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몇 년을 홀로 곪아갔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은 나를 감추고 내 안의 우울을 좋지 않은 것이라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곪아간 마음은 병들었고 썩어 갔다. 


병원을 나오면서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 보기 어려운 글일지 몰라도 이렇게 해야 하면 하는 이유들이 내게는 분명히 생겨났다. 내가 앞으로 걷기 위해 나를 스스로 대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안에 우울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밖으로 쏟아 내는 것.

그것은 내가 앞으로의 삶으로 한걸음 내딛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니 이런 모습이 끔찍하다면 당신도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 된다.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와 자유가 충분히 있다. 


이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을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를 더 나아가게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푸른 자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