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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Apr 10. 2017

파도가 일면

감정의 조수간만


한없이 밀려오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끝없이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순간들이 있다. 

추억이나 생각들이 대체로 그런 기분을 가지게 한다.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짧거나 혹은 길게 매번 조금씩 차이가 있다.


바다가 달의 인력에 의해 조수간만을 일으킨다면, 나의 감정적 조수간만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일으킨 결과물이다. 사람과의 관계나, 과거의 사건들, 앞으로의 일들과 순간의 상념이나 잡념... 

많은 것들이 밀려왔다 멀어지길 반복한다. 


최근 나를 요동치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격하게 몰아쳐서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일이었다.

그런 감정적인 격정을 일으키기 않겠노라 다짐하며 병원을 나선 뒤로는 사람들조차 멀리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 휘둘리며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우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셋이 몰려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게 가진 못했다. 소중해진 사람과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한 사람이 떠나고  두 사람이 남겨지는 것이지만, 마치 전부가 떠나버리는 것만 기분으로 매일 조금씩 울적해졌다.


바라보는 감정적 파도의 크기가 너무 높아 무서울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다시 예전의 주치의를 다시 만났다. 그렇게 세 번. 이제는 동네에서 영등포로 옮겨 개원한 주치의를 만나기 위해 회사에 반차까지 내며, 몰아쳐오는 감정의 파도에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휩쓸리고 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나선 길이었다. 


끊임없이 느껴지는 감정들과 걱정들을 이야기했다. 사실 선생님은 어떤 말을 하지 않는다. 가만히 들어보고 내 말의 중간중간 간단한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그런 질문들이 되게 상투적인 느낌으로 들려올 때도 있지만, 질문에 대답을 하며 다시 생각을 잘 정리할 때도 많아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솔직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파도가 제법 높아 걱정되는 것이 이해가 된다면서도, 아직 이전과는 달리 처음 겪어 보는 것이니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끝으로 상담을 종료를 했다. 의사는 일주일 뒤 날짜를 꼽아 예약을 잡아주었다. 불안하다면 약을 처방해주겠노라 했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어쩐지 그런 것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파도가 세차게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던 날. 나는 의외로 그것을 잘 견뎌냈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옆에 그렇게 버티도록 해 준 사람의 힘도 컸다. 30대를 훌쩍 넘었음에도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나약한 모습만을 보이는 나를 잘 버티게 해 준 그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이틀 후 파도가 핥고 지나간 감정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인사동에 향했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했던 인상적인 날들을 한번 굽어보며 회상하며, 그 사람이 없다는 부재를 대면해보고 싶었다.


여럿이 함께 거닐던 거리를 걸으며, 구석구석 놓인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훑어봤다. 내가 부여한 의미만큼이나 그들에게도 소중한 공간이었는지 사실 자신은 별로 없지만, 나로서는 그곳은 특별한 기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언제나처럼 인사동 거리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어쩐지 혼자라는 쓸쓸함이 진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적잖게 이런 감정을 자초하는 경향이 높다. 인사동에 도착한 순간에도 왜 사서 이런 감정적 외로움을 느끼려는지 후회를 했었으니, 스스로도 이런 감정을 자초하는 것에는 부정할 수 없는 듯싶다. 


홀로 인사동에 걸어야만 했던 일요일이 너무나도 적막한 공간에 나뒹구는 기분을 가지게 만들었다. 함께 들어갔단 전시공간에 들어가 보고 함께 차를 마시던 공간에서 커피를 마셨다. 함께 식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곳은 두 번이나 발길을 옮겨봤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정말 여럿에서 혼자가 되어버렸다는 기분에 다시금 파도가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그와의 이별을 겪을 때만큼이나 거대한 파도는 아니었지만, 칼날과 같이 부서지는 파도는 차가운 비수처럼 온몸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망연자실 아무렇게나 난간에 앉아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던 때에 전화가 왔다. 나와 함께 남겨진 소중한 사람이 걸어온 전화였다.


뭐 하고 있느냐는 둥의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무심히 바라보던 인사동의 풍경. 사실 그런 통화가 더 마음을 쥐어짜는 기분을 가지게 만들었다. 여기 혼자라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기분을 애써 감추며 통화를 이어가는 때 눈앞의 풍경에서 뜻밖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 색감이 정지하고 흑백으로 변한 화면에서 노란 옷 색감만이 풍성하게 뿜어져 뚫고 나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현실감이 사라진 상상의 순간과 같은 괴리감마저 이는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듯한 상황에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가 보지 못하게 등을 돌렸다. 


나를 염려해서 여기까지 그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와 준 것이구나 싶어 감사하고 고마웠다. 


밀려오던 칼날과 같은 파도가 잘게 부서지고 햇살을 받으며 따뜻해지는 기분처럼 느껴졌다. 거친 파도는 발목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따스한 물살이 되어 나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끊임없이 밀려왔다 멀어지길 반복하는 파도. 감정의 파도에는 이렇게 따스하고 감사함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것만 같았다. 


또 언제 다시 큰 파도가 몰려올지 모른다. 이번처럼 무탈하게 흘러갈지도 모르고, 혹은 인사동에서 느꼈던 그 순간처럼 나를 부드럽게 감싸는 파도일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밀려오면 반드시 멀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또 밀려올 것이다. 


언젠가 다시 밀려올 것이라면 인사동에서 느꼈던 그 날의 파도처럼 부디 잔잔한 파도로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아주길 바라며 그림을 완성했다. 




붙임 글 _ 월요일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월요일 오전 바쁜 틈에 전화를 받은 주치의는 마침 막 상담이 끝났다며 내 통화를 받아주었다. 

걱정했던 파도는 무사히 흘러갔으며, 되려 잔잔하게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파도도 몰려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주치의는 잘되었다는 대답과 함께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목요일에 잡혀있던 예약을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행복함을 느끼고 상황을 이겨냈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니 상담은 훗날 해도 충분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오래된 친구가 해주는 말처럼 나긋한 대화로 걱정을 담아 전하는 말이 기분 좋게 들려왔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생활이 이전과는 다르게 돌고 있음이 느껴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들은 끊임없이 파도치며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만, 그것들도 언젠가는 다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이렇게 끊임없이 몰아치는 감정의 조수간만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을 테니, 나 역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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