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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Mar 14. 2017

유년시절

조숙한 아이



유년시절 어른들의 칭찬은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표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받으면 아이들은 곧잘 그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경우들이 많다. 고래마저 춤추게 하는 칭찬인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칭찬들 중에 조숙한 아이라는 의미가 어른스럽다는 의미로 보통은 예의가 바르거나 또래에 비해 성숙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아이들에게 주로 하는 칭찬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칭찬을 많이 받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조숙하다는 보통의 의미와는 다르게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대체로 모든 것에 조심스러우며 소극적이었던 나의 행동은 표면적으로는 예의가 바르게 행동하는 아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실은 모두에게 미움을 받을까 겁을 내며 선뜻하지 않은 것이 많았던 아이였을 뿐인데 어른들은 조숙한 아이라며 나를 칭찬했다.


그 후로 조숙하단 평가가 덕지덕지 엉겨 붙은 채로 커버린 나는, 소심함과 조심스러움이 무기력과 우울감으로 자라나게 되었던 모양이다.


남들에게 조숙하게 보였던 이유로는 부모의 부재가 있었다. 나는 어릴 적 이혼하며 큰집에 맡겨져 자랐다. 버림 받았다는 감정을 너무 어린 시잘 안아야 했다.

7남매였던 큰집의 형제에 우리 둘까지 더해져 큰어머니께서는 졸지에 9명의 자녀를 돌봐야 했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집이기에 고된 농사에 아홉 명의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고됨을 알기에 그렇게 외롭게 지내왔던 그 시기에도 나는 불평 한마디 없는 아이로 자랐다.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는 아이는 어릴 때부터 많은 눈치를 보게 된다. 눈치는 혹시 이곳에서도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동반하며 소심하고 소극적인 아이로 나를 만들었다. 또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미움받지 않기 위해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조용하기 입을 다무는 방법을 9살의 아이가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던 모양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조숙하다고 칭찬하곤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그들도 가여운 아이라며 어쩔 줄 몰라하며 던졌을 지나가는 말에 불과한 칭찬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 그런 칭찬은 세상 모든 것에 눈치를 보아가며 지내던 나에겐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은 관심이었다.


물론 그런 성격이 정신적 토양이 되어 나름의 장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털어 낼 수 있었던 성장 시기에 털어낼 때를 놓쳐버린 탓에 이상하게 자라 뒤틀어진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만약 그때 털어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종종 생각해본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결국 모든 것에 번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성장의 기간에는 훌륭한 교육이 더욱 종요한 법이다. 단순 교과과정에 속한 교육이 다가 아니라 그 넘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다양한 것들에 대처하는 자세 등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에게 칭찬이 모두 좋은 방법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깨달았던 나이기에 이후 아이에게 칭찬을 하게 될 경우 두어 번을 고민해보고는 한다. 나의 말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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