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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Apr 18. 2017

우주의 별처럼 벚꽃 터지는 봄

아련한 벚꽃이 나부끼던 밤 


1월의 겨울 무렵,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벚꽃을 그리면서 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밤하늘 우주의 별처럼 벚꽃이 터지는 봄날의 야경이 아련하게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리고 우주의 별처럼 벚꽃이 터지는 봄날의 밤을 기다렸던 만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한때를 고대했다. 


그림은 완성되었지만 여전히 겨울이 한창이었다. 그렇지만 그 무렵에서부터 벚나무를 볼 때마다 설렘으로 가슴이 뛰곤 했다. 벚꽃을 기다렸기 때문일까. 올해의 봄은 이전의 봄과는 다를 것만 같았다. 


4월이 되어 벚꽃이 가득 피었다. 그동안 기다렸던 벚꽃이 흐드러진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어두운 하늘, 드문드문 놓인 가로등에 빛을 받아 하얗게 하늘을 수놓은 벚꽃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올해처럼 특별한 감정을 느끼며 벚꽃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벚꽃을 바라보면 마냥 예쁘지마는 않아요.
아련하다는 기분이 어쩐지...


흐드러진 벚꽃 아래 산책로를 함께 걷던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산책로에 잠시 멈춰서 커다란 벚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봄이 오면 피어난 벚꽃은 너무도 짧은 기간 아름답게 피어나 너무도 빠르게 지고 만다. 나풀거리며 날리는 벚꽃잎은 봄날의 아련한 상념과 같다고 느껴졌다. 


겨우내 기다림. 한순간의 아름다움. 바람에 흩날리며 지고 마는 아련함. 긴 겨울 기다렸던 봄날도 벚꽃처럼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살아오며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순간들은 짧게 피어났다가 나풀거리며 지고 마는 벚꽃과 닮아 있었다. 


지난 세월이 마치 혹독한 겨울처럼 힘들었다. 책망과 원망 등으로 점철된 성장기는 나를 안쪽부터 곪아가게 만들었다. 곪아간 성장기를 뚫고 겨우 고개를 들고 숨을 쉬기 시작한 작년. 나는 조금씩 변화했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방법들을 스스로 하나씩 터득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이하는 첫 번째 봄이었고, 벚꽃이었다. 그런 의미를 담아 기나긴 겨울 내내 봄을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벚꽃은 몹시도 아름답지만 금방 질 것을 알기에 아쉽고 아련했다. 그런 아련함의 끝에 서글픈 감정마저 일었다. 


바람이 산책로를 훑고 지나감에 벚꽃잎이 밤의 야경의 사이, 빛나는 별들처럼 허공 위로 반짝이며 나부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련한 봄날의 중심을 걸었다. 걸음 사이로 계속해서 벚꽃잎이 나부꼈다. 벚꽃은 정말 우주의 별처럼 잔뜩 야경 위로 터져 나왔다.  겨울의 한 지점에서 우주처럼 벚꽃 터지는 봄을 그리며 기다렸던 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며칠째 비가 온다. 출근길에 후드득 떨어져 버린 벚꽃잎이 가득했다. 벌써부터 벚꽃을 떨구는 봄비가 야속했다. 오랜 기다림에 좋았던 한때가 바닥에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벚꽃잎이 가득한 출근길을 걸으니, 우주처럼 가득 벚꽃이 터져 나오던 그날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쩐지 그날은 서글픔마저 느껴졌지만, 지나버린 후에 회상에는 아름답고 즐거웠던 풍경만이 떠올랐다. 아련하단 기분 끝에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결국 이렇게 지고 나야 새로운 계절과 완연한 봄날이 찾아온다. 비로소 기나긴 겨울의 삶에서 눈부실 봄날이 맞이할 것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 벚꽃은 가장 아름다운 자태로 겨울의 종결과 봄의 시작을 알리고 화려하게 지고 있다. 나의 과거의 아픔 끝에 맞이한 순간들이 빠르게 사그라드는 것이 아쉽기야 하겠지만, 더욱 좋은 생각과 삶을 위해 화려하게 질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나는 우주의 별처럼 터져 나오던 벚꽃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간직할 수 있을까. 올해와는 다른 감정과 다른 상황, 또 다른 누군가와 걷더라도 올해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담아둘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함께 담아 올해 벚꽃이 내게 남긴 상념을, 비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벚나무에 비춰보았다. 벚나무 아래로 나부끼는 꽃잎들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에 감정이 북받치고, 흩날리는 벚꽃의 아련함처럼 입꼬리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모처럼 출근길의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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