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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Apr 28. 2017

칼국수

인상적인 순간들을 마주할 때


점심시간에 칼국수를 먹는다기에 회사 동료들을 따라나섰다. 동네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1인분에 8,000원이나 했던 해물 칼국수.

내가 생각했던 칼국수와 달리 굉장히 호사스러운 칼국수였다. 가격도 그만큼이나 호사스러웠다. 아마도 들어가는 재료의 특성상 1인분을 따로 파는 것 같진 않았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아 적잖게 실망했다. 많은 해산물이 들어간 호사스러운 칼국수 사이, 알록달록한 색깔의 면들이 경망스럽게 느껴졌다. 맛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내가 아는 칼국수는 이런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등학교 3년간 수업료를 내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이었다. 수업료를 내야 할 때가 오면 돈보다도 많은 양의 죄책감을 등에 짊어지고 교무실로 들어가, 몇 장의 서류를 수업료 대신 냈다.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감면 받은 돈보다 많은 죄책감이 등에 눌어붙어 어깨를 짓누르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대학교보다도 저렴한 수업료라는 이유로 택한 사회교육원을 다닐 때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돈이 필요했고, 뭐라도 해야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했다. 그러면서도 가난이란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꿈을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 과분한 자존심만을 내세우며 다녔다.



칼국수집 알바 모집 - 2시간 1만 원, 식사 제공


 

집으로 향해 시장을 지나는 길에 모퉁이 전신주에 이런 종이가 있었다. 사람이 붐비는 점심시간을 포함한 단 2시간을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알바 전단 뒤쪽으로 보이는 허름해보이는 칼국수집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당시 수업보다는 교수님과 프로젝트를 하던 때라서 오후에만 학교를 갔었다. 프로젝트는 예상했던 일정보다 길어지고 있어, 오전에 학교를 가는 일이 드물었다. 학교로 향하기 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기 가장 적당해 보였다.


예상보다 너무 젊은 학생이 와서 놀랐다고 말하던 사장님과 면접 아닌 면접을 보았다. 형편을 말하고 일급을 받겠다는 조건 하나를 걸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인분으로 썰어둔 칼국수를 소분하여 봉투에 포장하고, 칼국수 면만을 구입해가는 분들에게 판매를 하는 일과 점심시간 식기를 설거지하는 일이 할 일의 전부였다.


일은 수월했다. 바쁘게 설거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몇 가지 반찬에 밥이나 칼국수를 먹으며 매대에 앉아 칼국수 면을 판매했다. 나는 주로 칼국수를 먹었다. 바지락 몇 개가 들어있던 하얀 칼국수는 매번 맛이 좋았다. 2,5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맛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2시가 되면 자리를 정리하고 내가 먹은 식기를 마저 설거지하고 사장님께 일급을 받았다.


사장님은 매일 '겨우 한 장 주려니까 미안하다'며 머쓱하게 돈을 내밀었다. 사장님은 매일 들어온 돈 중 가장 깨끗한 돈을 주려고 금고를 뒤적거렸다.  더러운 돈은 금방 사라지는 법이며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인데 깨끗한 돈을 주고 싶다는 것이 그거 금고를 뒤적거린 이유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하루를 살았다. 저녁을 사 먹기도 하고 그림 도구를 살 때도 있었다. 돈이 남는 날엔 늘 저금통에 남은 돈을 모두 넣어두었다. 돈을 받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일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이때 많이 배웠던 것 같다. 별것 아닌 액수일지 몰라도 사장님은 일한 대가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 역시 남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몸에 익혀가고 있었다.



칼국수 반만 내주고, 반은 담아주겠소?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르시는 할머니께서 테이블에 앉으며 매번 같은 주문을 하셨다. 아마도 칼국수 반을 갈라 두 번에 나눠 드실 모양이신가 보다 생각했다. 2,500원이라지만 1인 분치 고는 양이 많았던 칼국수를 다 드시지 못하던 어르신도 많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하며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하루는 사장님이 판매용으로 포장해둔 칼국수 두 덩이를 달라고 하셨다. 손님이 많아 조리용으로 준비해둔 면을 다 써버리면, 별수 없이 판매용으로 포장해둔 면을 꺼내서 조리를 하던 때가 종종 있었다. 별생각 없이 두 덩이를 꺼내 드리며, '손님은 한분인데 두덩이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비닐봉지에 담은 칼국수 한 덩이를 칼국수 육수에 넣어 끓였고, 다른 한 덩이는 육수를 별도로 담아 커다란 봉투에 함께 담았다.




배부르게 드시면 좋잖아. 내 칼국수 좋다고 오시는 어머니 같은 분인데.


매번 이렇게 두 그릇을 준비해서 드렸던 것일까. 팔팔 끓여진 칼국수를 그릇에 옮겨 담는 사장님의 주름진 미소를 보며, 묻지 않아도 왠지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장님이 할머니께 칼국수를 내어드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남은 설거지를 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분주한 시장통 풍경 사이로 넘어오는 햇살이 먼지가 내려앉은 오래된 유리창에 잘게 부서지며 가게의 한구석을 비추던 그날. 차갑지만 청량하던 수돗물로 설거지를 하며 한참이나 미소를 지었던 그때가 여전히 인상적인 한때로 남아있다.




이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 지금까지를 살아왔던가.


1인분에 8,000원이나 하던 칼국수를 바라보며 그날을 떠올렸다. 아니 매번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그때가 떠오른다. 바지락 몇 개와 야채만 들어있던 칼국수였지만, 그것과 비견할만한 맛의 칼국수를 여태 만난 적이 없다. 맛도 맛이지만 당시의 인상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살다가 인상적인 순간들을 마주 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은 꽤나 깊은 여운을 남기며 특별한 감정에 빠지게 만든다. 여태 힘들어도 살아왔던 이유가 이런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였을까. 


살아가며 몇번이고 특별한 순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림을 그리며 그런 순간들을 잘 담아두고 싶다. 애석하게도 나의 실력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그렇다고 매번 모자란 실력을 탓하며 아쉽게 남기고 싶지 않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아쉬움을 매우려 발버둥을 치며 아쉬움을 최대한 줄여보려 애를 쓴다. 글과 그림을 멀리하고 방황하던 때가 원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나간 세월을 탓해봐야 별 방법이 없다. 그저 지금에서라도 최선을 다할 방법외엔.


사장님이 내어주던 빳빳한 만 원짜리 한 장과 마음을 담아내던 칼국수와 같던 순간들이 녹아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그런 순간들을 여러 번 경험해왔다. 단지 그것들이 어떻게 소중했는지 잘 몰랐던 것뿐이다.  


최근 아름다운 인상하나를 마주했다. 아무리 인상적인 순간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거나 변하기 마련이다. 멀어진 인상들을 열심히 떠올리며 그린다 하더라도 그때를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듯 과거 칼국수 집을 다시 그린다고 그날의 인상이 잘 담길 리가 만무하다. 심지어 칼국수 집도 시장이 재개발되며 사라진지 오래다. 오로지 기억에만 남아버린 찾을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더 옅어지고 잊히기 전에 변변치 못한 실력이라도 남겨둘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그렇게 지나쳐왔던 인상적인 기억들을 붙들고 되뇌어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보잘것없는 글과 그림이지만, 그럼에도 이만큼이나마 남길 수 있게 만들어준 순간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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