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May 02. 2017

등산

천천히라도 올라야 하는 삶



열심히 달려왔다고 느낄 때에도 앞에는 늘 오르막이 있었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오르고 또 올라야만 하는 기나긴 등산처럼 느껴졌다. 


보이지도 않는 꼭대기만을 바라보며 인생이란 등산을 해온 기분이 든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그 높은 고지를 상상하며, 너무 급하게 정상에만 가려고 조급하게 굴었다. 그럴수록 아득히 멀기만 한 정상에 좌절하고, 자신의 위치를 비교해가며 자존감만 바닥으로 더욱 추락할 뿐이었다.




빠르게 올라간 사람들의 뒤를 쫓아가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그림을 그렸다. 올라가던 속도를 높여 평소에 비해 달리듯 등산을 한 셈이다. 그러다 손목에 심한 염증과 인대에 부상을 입었다. 다리를 비끗해 등산에 머무르는 것과 같은 신세가 된 셈이다. 욕심과 조급함이 결국 화를 부르고야 말았다. 


충분한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어째서 나태한 자신이라 책망했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쉬며 했더라면 이렇게 멈추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가 막심해졌다. 이렇게 멈추고 싶어서 그렇게 욕심을 부렸던 것은 아니었는데, 결국 나의 발목을 잡아채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든 것이 너무 열심히 하려던 그 마음이라는 것에 배신감마저 들어 서러웠다. 


별수 없단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그간 그렸던 그림들도 돌아보고, 그리고 싶은 생각들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정상을 향해 하늘로 쳐들고 있던 고개가 그제야 눈높이와 발아래로 내려왔다. 


모아둔 그림들에 담긴 순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제야 주변의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꼭 정상이 아니어도 인상적인 순간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정상을 바라보던 시야가 눈높이로 맞춰지니 자존감이 차이도 수평을 이루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바르게 달리기만 했던 다리도 그동안의 고생을 버텨준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오르는 것도 삶에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때론 풍경을 즐기며 여유롭게 천천히 한 걸음씩 오르는 삶이 더 많은 것을 내게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산 것만 같다. 


그리고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주변을 돌아보며 반짝이는 지금 이 순간들을 보다 많이 마음에 담아 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칼국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