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May 16. 2017

안의 사람들, 바깥의 사람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이것은 2015년 10월 7일에 작성했던 일기를 토대로 새롭게 작성한 내용입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닌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서울대학교 생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다. 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다. 이곳에서는 그런 것이 실상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런 것을 다 믿을 수도 없고 또 믿을 필요도 없다. 그저 그냥 그대로 듣고 받아들일 것인지, 잊어버릴 것인지만을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집단 상담 시간에 그가 자신에 대해서 말할 차례가 되었다. 나보다 10살 정도는 어려 보이던 그 학생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한 뒤에 세계은행 총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쪽으로는 무지하기에 세계은행라는 것이 있으며, 거기에도 총재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금방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는 어떤 말을 하던지 마지막에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제가 이런데 있을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런데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그에게 가지게 만드는 것인지 몰라도 그의 말에 끝에 말버릇처럼 따라붙었다. 그가 말하는 여기는 정신과 폐쇄병동이다.  


마음이 아파서 오는 사람들이 모인 곳. 다리에 골절을 입거나 찰과상을 입을 때 병원을 찾는 것처럼 단지 마음에 병이 들어 찾아오는 것뿐인,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 모인 병실일 뿐이다. 물론 병실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스스로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알코올 중독으로, 지독한 우울증으로, 원일모를 무기력함이나 혹은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도 없는 이들이 가득한 곳이고, 그들 모두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했다. 사회에서 낙오되어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 느끼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만났던 환자들 중에서 그것을 가장 신경을 쓰는 사람인 듯 싶었다. 아직은 젊은 나이였기에 그런 것일까.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고, 스스로를 똑똑한 사람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어조엔 자신이 타인보다 똑똑하고 나은 사람이란 뉘앙스가 녹아있었다. 그는 이곳에 있는 것은 잠시 머무르는 것일 뿐 일시적인 것뿐이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생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 말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별로 받아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그런 중압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저마다 다른 삶의 무게를 가지고 섣불리 이해한다고 손을 내미는 행동 역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공부나 그림이나 좋아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좌절을 겪고 이곳에 머무르게 된 것에 동질감이 일어 그의 말에 관심이 생겼다.


자신이 타인보다 똑똑하고 나은 사람이란 뉘앙스를 나만이 느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는 시간이 지나도 남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갔다. 그도 그러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삼삼오오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낼 때 사람들은 적잖게 그가 힘주어 말하던 부분에 불편함을 내보이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는 법이 아니겠냐며 대충 대꾸했지만, 나 역시 타인과 나를 비교해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은 없었나 반성 아닌 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입원한 지 일주일쯤. 같은 병실을 쓰던 그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는 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입원하며 맡겨두었던 옷으로 갈아 입고, 환자복을 반납하며 보호사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다시 볼일은 없을 거예요. 저는 이런데 올 사람이 아니니까요.


퇴원 준비를 마치고 그가 방을 나서자 옆 침대를 쓰던 불면증을 가진 아저씨가 이제 방이 조용해지겠다며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폐쇄병동의 문 밖에 '이런데 올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특별할 것만 같은 폐쇄병동도 어찌 보면 사회를 그대로 축소해둔 듯한 모습으로 비칠 때가 많다. 그는 다시 오지 않을지 몰라도 폐쇄병동에서 지낼 때와 다름없을 사람들을 만나게 바깥에서 될 것이다. 작은 폐쇄병동에 모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말이다. 

혹은 바깥에서 그가 여전히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고. 


병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정말 다시는 오지 않게 되길 빌어줬다. 그가 바라던 대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길 바라며. 또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니길 바라며.


그리고 그가 떠난 병실은 정말로 조용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우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