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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Aug 09. 2018

갈란투스(스노우드롭, 설강화)

희망을 이야기하는 꽃


바라는 소원을 이루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 노력이 없이 일어나는 소원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희망도 없는 삶에 불현듯 나타나는 한 줄기 기적들. 


기적이라는 것을 특별히 바라며 사는 편은 아니다. 세상에 기적이란 것은 한정적 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희망을 넘어선 기적이 일어난다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기적을 써버린 것일 테니, 꼭 필요할 사람에게 일어났어야 할 기적 하나가 사라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오래전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던 때부터다. 


내가 입원하던 병동 근처에 소아병동이 있었는데, 아주 어린아이들이 제 몸보다 살아온 시간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기적이라는 것이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면 어째서 저 아이들은 저리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를 여러 번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세상에 기적은 한정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닿았다. 


이후로 기적을 바라진 않게 되었다. 나에게는 분명히 과분한 것이니까.


 단지 희망을 바랄 뿐이다.




김선심이란 분을 뉴스로 보게 되었다. 중증 장애를 앓고 있어, 보조사가 없이는 삶을 이어가기 힘든 분이다. 나라에서 정한 정책으로 인해 24시간 보호를 받아야 할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보호사는 그녀를 두고 퇴근을 해야 하는 날들이 있다고 한다. 


보호사는 그녀를 두고 떠날 때 행여 불이 날까 선풍기를 끄고 중증 장애인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찬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그녀를 침대에 묶어두고 간다고 한다. 


더운 여름, 그녀는 물도 마시지 못하고 선풍기를 쐬지도 못한 채 손수건을 붙들고 밤을 견뎌낸다. 

그리고 다음날 보호사가 돌아오면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선풍기를 쐰다고 한다. 


소외된 분들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미비하다. 

단지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할 뿐이다. 


어쩐지 가슴 한켠이 몹시 저려온다.




루게릭 환우를 위한 병동을 건립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려달라며 릴레이 운동이 SNS를 타고 흘러 다녔다. 48시간 이내에 그림을 그리고, 작성을 하라는 지목을 받았지만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어떤 그림으로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며 며칠을 보냈다. 


루게릭 병은 10만 명 중에 2명이 일어나는 병이라고 한다. 물론 너무나도 희귀병이라 앞서 이야기한 김선심 씨와 같은 분들을 돕는 것이 보다 다수를 위한 일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의는 아니고, 응당 당연한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따로 생각해야 할 문제다. 


루게릭 병에 걸려 신체를 모두 빼앗겼지만, 자신의 가족과 소중한 관계, 행복을 앗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인류에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스티븐 호킹 박사가 별이 되어 떠났다. 루게릭 병의 이름의 시초가 된 위대한 야구선수 루게릭이나 우리에게 제법 잘 알려진 박승일 선수, 모두 희귀병을 앓았지만 세상에 어떤 의미를 남긴 이들이다. 


김선심 님과 소아병동에서 마주쳤던 아이들은 어떤 의미를 남기기 위해 세상을 그리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추운 겨울을 뚫고 피어나는 갈란투스, 설강화. 힘든 시기를 딛고 일어나 희망을 이야기는 하는 꽃을 그리며 나는 얼마만큼의 희망을 바라고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또한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림 하나 그리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해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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