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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Sep 20. 2018

유년시절 3

몇 남지 않은 모습


어릴 적 사진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중 특히 이마에 흉터가 없는 사진은 극히 드물다.

워낙에 시골에서 자란 탓에 사진을 자주 찍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그보단 너무 어린 나이에 화재로 이마에 화상을 입으면서 3~4살 무렵부터 이마에 화상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 크다. 


어릴 적 아버지는 우체부셨고, 어머니는 20대 초반의 나이 어린 주부였다. 

아버지는 우체국에서 숙직을 하던 때가 종종 있었는데, 숙직을 하시던 그날 밤 당시 살던 집에 백열전구가 꺼져버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별 수 없이 동네 공판장에 백열전구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섰고, 잠이 들지 못했던 어린 두 남매가 무섭지 않도록 5단이나 되는 서랍장 위에 촛불을 켜두셨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나는 무엇이 그리도 신기했는지, 촛불을 잡아보겠다고 서랍장을 하나씩 열어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 촛불을 잡았는데, 떨어진 촛농이 뜨거워 양초를 놓쳐 겨울 이불에 불이 붙어버리고 말았다. 




집이 전소될 정도로 큰 불이 났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마에 화상을 입었을 뿐 크게 다치진 않았고, 한 살 터울의 동생은 머리카락만 약간 그슬린 정도였다.


큰 불이 나자 무서워진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와 엄마를 찾으며 펑펑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을 뚫고 어머니께서 들어와 우리 두 남매를 안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엄마의 품에 안겨 집을 나오자 영화처럼 집에 터져버렸다. 


화재로 집이 터져버린 것은 오래된 브라운관 TV와 LPG 가스통이 폭파되었기 때문이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간혹 이마에 흉터를 보고 왜 그러냐는 질문을 하면 나는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사람들은 모두들 놀랍게 나를 바라본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과연 지금 기억하고 있는 당시의 상황이 정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어서 일까. 아니면 당시 어쩌다 그랬냐는 사람들의 말에 대답하던 내 말을 다시 부모님과 친지들이 하던 말을 들으며 마치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몇십 년이 흘렀지만 때때로 그날 불이 나던 때의 꿈을 꾸곤 한다. 불길은 어쩐지 황홀하게 일렁이고, 나는 그 안에서 여전히 울고 있는 꿈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시 그날을 되새기게 만들곤 한다. 


그때 불이 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화상을 입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유년시절의 모습을 그려보면서도 다시 그런 생각들을 여러번 해보았다. 



2018.05.18 _ 모나미 볼펜 드로잉 유년시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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