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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Oct 20. 2018

엄마 _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넌 다른 사람은 다 그리면서 왜 엄마는 안 그리냐?

오래전 그렸던 아버지 그림을 내심 부러우셨던 모양이다. 벽에 걸린 아버지 그림을 보는 손님들이 누가 그렸냐는 질문을 할 때처럼 어머니께서도 자신의 그림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심 자랑을 하고 싶으셨나 보다.

이후 한차례 동생을 그린 뒤로 어머니의 서운한 마음은 더 거세졌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매번 어떤 생각이 동해야 그림을 그리곤 했던 이유로 오랜 기간 엄마를 그리진 못했다. 물론 엄마를 그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거나 생각이 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엄마를 그리는 동안 오래된 기억들이 꽤나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령 이전에 국화를 그릴 때에도 나는  몇 개월이나 먼저 떠나버린 형을 생각하며 당시의 감정과 오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쓸데없이 감정적인 탓도 크겠지만, 담긴 의미만큼의 떠오르는 기억들은 켜켜이 쌓인 감정을 휘저으며 마치 흙탕물이 어지럽게 피어오르듯 정신을 사납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변에 지인들은 그런 내게 너무 감정을 쏟지 말라고들 한다. 또 어떤 혹자들은 뭐 그리 대단한 예술을 한다고 그러고 있느냐고.


쓸데없고 지나치게 거창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다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스스로 나를 치유해가는 과정의 일환이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지난날 인생을 허투루 허비해버린 나와의 화해를 해가는 과정이기에 별 수 없는 문제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나 역시 엄마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를 떠올리면 온갖 감정이 들끓으며 괴롭게 만들곤 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싸우며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던 때에 엄마는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만삭이던 엄마는 집이 없어 아버지와 땅콩밭 덤불에 기대 잠을 청했던 적도 있다고 하셨고, 그 후로 큰집과 친척 집, 친구 집을 전전하며 나를 뱃속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동네 유지였던 외가댁에서 잘 자랐을 19살의 엄마는 평생 하지 않았어도 될 고생을 하며 이듬해 20살이 되던 때에 나를 낳았다. 10대에 나를 가져 20대에 나를 낳은 셈이다. 


뱃속에서 키우던 때만큼 낳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애가 거꾸로 배에 들어있어 그런 나를 꺼내기 위해 한 성당의 수녀님이 손에 기름을 발라가며 온갖 고생을 다하셨다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위대한 영웅의 출생 담도 아닌데, 뭐 그리 야단을 떨며 세상에 나왔나 싶다.


그렇게 힘들게 낳았는데도 엄마는 나와 동생을 잘 양육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무 살 남짓에 엄마가 되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인지 몰랐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엄마라는 책임을 짊어지기엔 상상도 하기 힘든 어린 나이다.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꽤나 오래 나를 진료했던 의사 선생님이 이리 말씀하셨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 되었던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던,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런 이유로 이야기를 해가는 방법으로서 택한 것이 지금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그리는 동안 생각한 것들을 적어가고 있다. 이 모든 행동이 지난날의 나를 치유해가길 바라며. 


요 며칠 엄마를 그려보자며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어릴 적의 힘들었던 일들과 그로 인해 외롭고 괴로웠던 날들을 다시 떠올려가며 엄마를 그렸다. 


아직도 한참을 그려야 하지만, 그려나가는 동안 엄마와 관련된 과거의 기억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기 될 것이다. 무척이나 괴롭고 마음이 무겁지만,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졌다. 


엄마를 용서하고 나 역시 엄마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 그간의 철없이 가졌던 해묵은 감정으로 어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노라고. 


그림이 완성되는 그 끝이 부디 좋은 결과로 남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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