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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Nov 27. 2018

감정 침식 2

거친 파도가 몰아치던 바다


감정 침식 2. 거친 파도가 몰아치던 바다.


거친 돌은 빛에 반짝일 수 없다. 

하지만 많은 파도와 바람을 견뎌내며 닦인 돌은 햇빛만큼 눈부시게 반짝일 수 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가난한 가정, 다른 가족에게 맡겨져 자라야 했던 유년시절과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던 부모님의 싸움, 그 나머지 날들에 채워진 외로움과 우울감, 차오르지 않던 자존감, 떳떳하지 못했던 일상들까지.


어떤 이유로 나는 그토록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만 했던 것일까. 


휘몰아치던 감정이 조금씩 나를 갉아먹었고, 중심을 잘 잡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탓에 몰아치던 감정의 파도에 쓰리지고 나 뒹굴기 일쑤였다. 그렇게 숱한 생채기가 무수히 생겨나던 지난날.






제주로 이사를 하고 바다를 바라보다 바닷가에 수도 없이 뒹구는 주상절리의 흔적들을 만났다 

얼마나 많은 파도와 바람을 견뎠기에 이렇게 동글동글 반짝이는 돌이 되었을까.

힘들었던 지난날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기만 하던 나였는데, 어쩐지 그런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를 닦아내던 과정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전에도 파도를 그렸던 적이 있었다. 


https://brunch.co.kr/@vegadora/28


이때만 해도 그저 조금만 더 잔잔히 밀려오길 바라며 그림을 그렸다. 밀려오는 파도를 별 수 없이 넘어서야 할 일로만 생각했다. 


밀려오는 파도에 반짝일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마음속 한구석의 응어리가 다소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다. 





거친 돌은 빛에 반짝일 수 없다. 

하지만 많은 파도와 바람을 견뎌내며 닦인 돌은 햇빛만큼 눈부시게 반짝일 수 있다.


2달 남짓 파도를 그리며 평생을 이어오던 질문에 모든 해답이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만 그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듯싶다. 


비록 여전히 그날 느꼈던 감정의 한 부분이 빠진듯한 기분에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까지가 완성이라며 서명을 하고 다시 그날의 바다를 찾았다. 


앞으로도 숱하게 밀려오는 파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할 테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닦아내고 더욱 빛나도록 만들어줄 과정이라 생각하며 담대하게 받아들일 용기를 얻었다. 


그러다 숱한 바람에 닦이다 끝내 부서져 모래가 될 날이 오더라도 끝없이 넓은 이곳에서 반짝이던 날이 있었노라 말하며 만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파도에 실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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