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 풍차 해안 도로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바람이 어떤 물체를 움직이는 순간을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실체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제주로 이주하고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은 곳도 바람과 관련이 깊은 곳이 많습니다.
산굼부리의 억새, 유민 미술관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정원 같은 곳들이죠.
제주의 이곳저것을 돌아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풍차들이 반가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늦은 저녁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다가 신창 풍차 해안 도로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신창 풍차 해안도로를 다녀왔거든요.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습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있었는데, 바람이 강하지 않은 탓인지 대체로 멈춰 있더군요.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오래전에 그려둔 그림 한 장이 떠올랐어요.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멈춰 서있는 듯한 풍차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인데요.
저는 그때 그림을 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겨두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좀 움직여주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풍차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로 망가져 있거나 그렇게 되도록 나를 갉아먹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따금 새들 날아들고, 밤낮이 스치가는 곳에서,
비바람 맞으며 폭풍을 견뎌야 할지라도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불어온 바람이 나를 다시 세차게 돌게 해줄지도 모르니까.
이번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여전히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혹은 불어오는 바람을 붙잡지 못하고 여전히 망가져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바람에 세차게 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정답은 어떤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보다 분명히 무엇인가 변했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번 그림을 그리면서 이전보다 조금은 더 성장했음을 새삼 깨닫게 되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