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실패에도 그려내고 싶었던 것
아침이 되면 출근을 위해 부랴부랴 씻고 채비를 합니다. 늘 잠이 모자란 느낌으로 집을 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 찬 공기를 맡고서야 잠이 서서히 물러가곤 하죠.
서울만큼이야 춥겠냐마는 제주의 아침도 꽤나 춥게 느껴져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 넣고 걷다 한 번씩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촬영하는 곳이 있습니다. 집 근처 억새의 풍경을 마주할 때입니다.
항상 억새밭을 지나며 출근을 하다 보니 이 멋진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억새 들판을 지날 때 바람이 일면 억새가 스치는 소리가 마치 잘 다녀오라는 속삭임처럼 들려오기도 합니다.
더욱이 제주로 이주하고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 대개는 억새와 관련된 곳이 많기도 하고요.
산굼부리의 억새라던가, 가메옥의 억새 풍경, 집 앞 억새 들판 등등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리기가 어려워 몇 번이고 쓴 맛을 보아야 했습니다. 두어 번 실패하고 나니 자신감마저 떨어지더라고요. 의욕만큼 그리기 어려운 것들이 참 많아요.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할 겸 이전에 찍어둔 억새 풍경 중에서 그나마 그리기 쉬울 것 같은 사진을 선택해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산굼부리의 억새 풍경이지요.
이따금 잘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저에게는 최근 억새 풍경이 그런 것이었네요.
수채화로 하나씩 그려가면서 참 어렵구나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어느 정도 그리고 나니 마음이 놓입니다. 아주 마음에 들게 그려진 것은 아니어도 완성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어느 결과물이 그려졌으니까요. 조금은 성장한 기분이 듭니다.
그림을 그리며 삶과 참 많은 부분 닮아있다고 느낍니다. 물론 그림이 제 삶에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요. 해내고 싶은 무엇인가를 열망으로 품어 몇 번의 쓴 맛을 맛보았지만 일정 부분 타협하고 결국 완성을 하고 나니 다음번에 과정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번 생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 참 다행입니다.
그리는 과정을 기록을 남겨둡니다. 모쪼록 즐겁게 과정을 함께 봐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