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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지식탁 Jan 25. 2019

채식과 비건 사이

어쩌면 그닥 어렵지 않을지도 몰라요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아직 비건(완전 채식)의 삶을 살고 있진 않다. 다만 지향하고 있고, 공부하며 선택해 가는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근래 비건베이킹을 공부하며 비건 혹은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내 주위에는 베지테리언이 거의 없어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과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관련해 여러 책들도 접하고 있다. 처음에는 비건베이킹 및 채식 레시피 등 요리 관련 책으로 시작했던 독서가 점점 환경호르몬 방지 및 배출 등 보다 포괄적인 건강한 삶을 위한 지침서로 이어지더니,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책들은 음식을 구성하는 재료의 현 실태를 실제적으로 다루고 있다던가, 육식과 채식의 문제, 음식과 질병의 문제, 나아가 환경문제를 다루는 책들이 눈에 잔뜩 들어온다. 물론 아직 다 읽진 못했다만.


내가 아직 비건으로 살아가고 있진 못하더라도, 이렇듯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접하면서 나의 세계관과 생각의 방향도 상당히 넓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무작위로 들어온 정보들을 거르고 분별하며 취사선택해 내 삶의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음식과 식생활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이 꽤 많이 바뀌었다. 특히나 육식과 채식의 문제에 대해.


이 곳에서 반드시 육식을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를 말하고 싶진 않다. 나 역시 누구에게 그렇게 말할 처지도 아니거니와 사람마다 선택의 기준과 이유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강요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채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니, 적어도 내 개인적으로는 채식을 해야 할, 하면 좋을 이유만큼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채식과 비건 사이



지금까지 내가 채식과 비건이라는 단어를 혼용해 사용했는데, 이 두 단어의 쓰임이 나름 ‘그 세계’에선 은근히 같은 듯 다른 것 같다(저의 사견입니다).


개인적 경험에 의한 바로는, 비건은 채식을 끌어안은 보다 더 광범위한 윤리적,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인식하는 집단이라고 나는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비건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비건의 삶을 택한 동기를 물어보면, 윤리적 문제 때문에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렇지 않고서 하루아침에 비건의 삶을 선택하고 유지해 나가긴 정말 어렵다고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채식은 외양으로는 비건과 거의 흡사한 양상이지만, 나처럼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혹은 다이어트나 디톡스 등의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채식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나와 남편의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모든 유제품과 육류와 심지어 어패류까지 먹지 않는 비건은 당장 부담스럽지만, 가능한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해봐야겠다는 식습관의 변화에 대한 다짐 혹은 갑자기 닥친 질환으로 채식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어서 채식을 시작했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망원동 비건/채식 식당 어라운드그린



채식 위주의 생활을 아주 조금씩 해나가다 보니, 비건의 삶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직까지 다소 ‘튀는’ 듯한 이미지가 아직 존재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비건으로 사는 삶이 높은 벽을 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부의 관점에서 예를 들자면(개인의 경험이기도 하다), 김치찌개를 만들기 위해 마트에 가서 자연스럽게 돼지고기로 향하던 손을 잠시 멈칫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곧 돼지고기가 아닌 대안의 재료를 찾아보며 조금 더 건강한 식탁을 고민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친환경 제철 농산물을 찾아 구매하게 되고, 나아가 농산물 재배의 현실이나 세계적 이슈인 GMO 등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며, 환경오염과 환경호르몬으로 인해 유발되는 위험을 인식함과 동시에 육고기를 만들어내는 가축 사육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인식하면서 채식의 필요성을 다시금 실감하는.. 김치찌개 하나로도 서로 결국 맞물리는 큰 생각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고기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점진적으로 확장해나가는 비건의 삶이 아닐까.



나의 비건베이킹의 산물들




그리고 마크로비오틱



채식의 삶을 살고자 하면서 새롭게 접한 학문(?)이 마크로비오틱이었다. 이에 대해 더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글들이 많으니, 초보인 내가 이해한 정도로 가볍게 풀자면 마크로비오틱은,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제철에 나는 유기농 음식을 껍질까지 최대한 버리지 않고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나의 채소 전부를 섭취함으로써 그 채소가 가진 고유의 음양 에너지와 생명력을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다고 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중요시하는 마크로비오틱적 관점에서의 식생활도 자연스럽게 채식 위주의 섭생을 지향한다. 다만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이나 컨디션에 따라 섭생의 양상도 다르기에, 육식을 포함하는 마크로비오틱 요리도 간간히 볼 수는 있었다.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기초적 개념을 배우면서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마크로비오틱이 단순히 식생활의 변화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중요히 여기는 가치관에 따라 건강하게 재배된 채소를 고르고, 나 스스로 조리대 앞에서 채소를 다듬어보고, 마크로비오틱의 조리법대로 채소의 기운을 고려해 조리하는 과정에서 이 음식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손길들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단숨에 먹어치우면 별 것 아닌 요리인데, 긴 시간과 호흡을 투자해 직접 요리를 하는 과정은 상에 오르는 모든 음식과 재료 하나에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어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마크로비오틱은 비건보다 더 느슨한 채식 생활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채식보다 더 엄격한 마음가짐으로 채식을 바라보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한 것이다.



마크로비오틱의 원칙대로 조리한 요리로 채식이어도 맛있는 식사가 차려졌다.



채식, 비건, 마크로비오틱, 세미 베지테리언, 기타 등등.. 발을 들이고 보니 더욱이 무궁무진한 세계이지만 무엇을 선택하면 어떠랴. 누구나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꾸려간다.


요즘 나는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생각하며 나를 가꾸는 삶을 고민한다. 아직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계에 있지만 반드시 이건 먹지 말아야 하고 저건 먹어야 하며 이건 피해야 하는 등의 ‘원칙’을 고집하느라 스트레스받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때마다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엇이 내 몸과 마음에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생각. 그 지혜가 있어야 내 몸을 위한 결단을 과감히 할 수 있을 테니.


그러고 보면 건강한 삶에 있어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편안히, 건강하게 가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엇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는 제과점의 스콘 대신, 믿을 만한 재료로 내가 먹기 위한 스콘을 굽는다. 맛이 좀 떨어지면 어떠랴. 먹을 때의 마음이 편하니 속도 훨 편하다.



앉은뱅이 우리밀로 만든 비건스콘. 출출할 때 하나씩 먹으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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