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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지식탁 Jan 17. 2019

나는 왜 비건이 되려고 하나

잠시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느덧 내 나이 서른셋. 결혼 3년차.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분별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먹고 싶은 대로 먹었다.

당시 홍보마케팅 일을 했던 내가 밤낮없는 회사생활로 몸이 망가지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난치성질환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나름 생명유지(..)를 위해 그 좋아하던 커피를 끊고 육류와 유제품도 가려먹긴 했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 내 몸은 자꾸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통증에 둔감할뿐더러 뭐든 일단 참고 보는 나는 그저 참으려 했을 뿐 회복을 위한 노력에 힘쓰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때의 나는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몰랐고, 고민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나이가 서른줄을 넘어서면서 결혼을 했고 가정이 생겼다. 평생 다닐 줄만 알았던 직장을 퇴사했고, 이전의 나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이른 나이에 전업주부이자 흔히들 말하는 경단녀가 되었다.

결혼하면서 만나게 된 이 모든 생활의 변화와 함께, 나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온 남편의 건강까지 적신호가 오면서 우리 부부는 인생의 큰 파도를 만났다. 몸보다도 마음이 더 힘들었던,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무려 1년 반. 씨름은 약 1년 반동안 지속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당시에는 인정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긴 시간동안 꽤 무거운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결혼생활은 감사히도 행복했고 남편은 내게 큰 사랑과 안정감을 주는 든든한 존재였지만, 내가 설 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바도 모른 채 깜깜한 터널 안에 서 있는 것 같은 막막함과 불행감에 매몰되어 홀로 있을 때마다 우울했고 꽤 자주 눈물이 났다. 괴로워서 독서, 뜨개질 등 취미생활로 공허한 마음을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이러면 안되겠다는 채찍질같은 생각이 불현듯 찾아왔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내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다 진짜 큰일나겠구나, 뭐라도 해야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남편은 '해야할 것 같은 거 말고, 해야만 해서 하는 거 말고,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밤낮없는 회사인 생활로 돌아갈 자신은 없었다(돌아가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심했지만 건강이 다시 무너질까 두려웠다). 그렇다고 주부생활도 꽤나 익숙해진 상황에서 남편이 출근하고나서 나 홀로 오롯이 있는 그 빈 시간을 더이상 그냥 내버려둘 순 없었다. 지나온 1년 반으로 충분했다.


머지않아,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비건베이킹을 시작했다.




비건베이킹을 선택하기까지



올해의 첫 요리, 무의식적으로 고기육수와 고명을 올리려다 정신차리고 만들었던 채식 떡국



남편도 나도 몸이 약해지면서, 우리 부부의 주요한 관심사 중 가장 큰 부분은 치료도, 병원도 아닌 [음식]이 되었다. 약이나 병원에 의지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심지어 의료인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려고 나름 신경쓰게 되면서 그동안 무의식중에 소비하는 나의 식재료 및 음식들을 돌아보며 육류의 소비를 줄이고 채식 식단의 비중을 높여갔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육류와 유제품이 우리의 몸 속에서 건강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걸 체감했기에 밥상에 올라갈 음식만큼은 제철, 유기농 식물성 재료를 구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했던 소비가 있었다. 바로 이었다. 우리 부부 둘다 워낙 빵을 좋아해서 꽤 자주 샀을뿐더러 카페를 가도 디저트를 꼭 같이 주문해야 만족하곤 했고, 직접 만들줄 모르니 당연히 늘 사먹었다. 구매할 때도 그냥 유기농밀가루로 만들었다 하면 안심하고 사먹는 정도였달까.


사실 빵이 건강에 좋지 않은 이유를 대라면 줄줄 읊을 수 있다.

한 덩어리씩 떡 하니 들어가는 버터. 버터면 차라리 다행이다. 단가를 낮추려고 마가린을 쓰는 곳도 부지기수. 마가린은.. 제대로 안다면 정말 식품이라고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직접 만들어보면 놀랄 만큼 들어가는 설탕, 주로 백설탕.

콜레스테롤 함량 높고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어디서 왔는지 모를 계란.

이 세가지 없이 만들어지는 일반 빵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유기농밀가루 쓰는 곳? 거의 없다. 정제된 백밀가루를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수입산 밀가루를 쓴다고 써붙인 곳이 좋은 재료를 쓰는 것 같지만, 수입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수입일 경우, 유기농으로 재배했다 해도 긴 운송과정을 버티게 하기 위해 방부제를 엄청 뿌린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밀가루는 글루텐함량이 높아 몸의 상태를 파악해가며 섭취해야 한다.

그 외에도 빵을 더 아름다워보이게 하기 위한 각종 색소, 시럽, 크림. 그뿐인가. 부패 방지나 단맛을 더 부각시키거나 촉촉함을 주기 위한 무수히 많은 첨가물들(물론, 좋은 버터, 좋은 우유, 무항생제 계란 등 정직하고 좋은 재료로만 만드는 베이커리도 최근에 많이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

알게 모르게 섭취한 해로운 성분들이 다 몸 속에 쌓여 빠져나가지 못하고 축적된다. 점점 과거에는 없었던 수많은 질환들이 생겨나는 것은 몸 속에 환경호르몬이 쌓인 결과라는 해석이 꽤 많이 나오고 있다(참고:제4의 식탁, 임재양 저).


아는데도 참 끊기 어려운 것이 빵.

이거 하나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괜찮을거야 하면서 먹었던 빵이 벌써 얼마나 되는지 셀 수도 없다. 그렇지만 빵을 먹고 나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더부룩한 느낌을 조금씩 더 예민하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건강한 빵을 찾기 시작했고,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우선 비건베이킹에 대한 책을 샀고(새롭게 뭘 배우려 하면 책부터 사재기 하는 습관보유자), 동네의 비건&글루텐프리 베이킹스튜디오에서 클래스를 듣기 시작했다.

사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지금 우리 형편엔 상당히(꽤 많이) 부담되는 일이었다. 사회초년생인 남편의 월급으로 2인생활을 꾸리는 자체도 빠듯했던데다가, 그런 상황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것이 늘 남편에게 미안했던 나의 부채의식이 맞물려, 선뜻 [이체] 버튼이 눌리지 않았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시간을 돈으로 사자고 말했다. 부담스러운 마음도 이해하지만 지금 아니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인생에 찾아온다고. 빚도 능력이라는 허세스러운 말까지 붙여가며ㅋㅋ 이체를 못 누르고 달달거리는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서른둘 끝자락, 나의 새로운 배움이 시작되었다.



비건 & 글루텐프리 포카치아 (NO 밀가루, 버터, 계란, 첨가물)


비건 & 글루텐프리 머핀, 미니 쑥파운드 (NO 밀가루, 버터, 계란, 첨가물)




나는 왜 비건이 되려고 하나



매일 먹고 마시며 살고 있지만, 생각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하나 사더라도 이 음료가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직까지 우리의 문화는, 그런 사람을 까다롭고 피곤하게 산다고 말한다. 짧은 인생 그냥 먹고싶은 거 먹으며 살다가 죽겠다고.


납득까진 아니어도 이해는 된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앞서 말한 건강하지 않은 재료들은 모두 피하면서 비건,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고립되는 일이다.


나 역시 아직 비건은 아니다. 계속 고민하며 공부하는 부분이지만, 건강을 생각해 선택하는 채식이 무조건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마다 체질과 몸의 건강상태에 따라 섭생은 적절히 조절해야 하는 것이 맞다. 또한 채식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원칙'으로 세워 스트레스 받으며 채식을 하느니, 차라리 가끔 육식을 즐기는 삶이 더 윤택하고 건강한 삶일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각종 첨가물과 화학물질 등 환경호르몬을 유발하는 성분을 피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피하더라도 완전히 피할 순 없어져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이미 무수히 몸 속에 쌓인 것을 배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채식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간절한 마음에 구구절절해질 것 같아 이하 생략.


여하튼, 피해야 할 것을 피하고 취해야 할 것을 취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 나는,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을 지향하는] 오보 베지테리언(+생선) 정도가 될 것 같다. 베지테리언을 표현하는 명칭에도 다양한 단계가 존재하는데, 내가 선택한 단계를 칭하는 바가 없어서.

비건을 지향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삶을 살고 싶고, 채식하는 삶이 사회의 건강한 공생과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는 윤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시체를 먹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거창한 이유는 내버리더라도, 내가 건강한 삶을 살 때 나의 주위도 세상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삶을 향한 통해 단순히 건강한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먹는 섭생의 차원을 넘어, 내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더 건강하게 바뀌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비건베이킹뿐만 아니라 마크로비오틱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러한 다채로운 호기심을 품은 나를 응원하는 남편의 통큰 선물. 물론 카드값에 허덕이고 있는 마이너스인생이다만 의외로 마음이 편하다(아마도 초월한듯).


 

나의 베이킹라이프에 꽃을 피워줄 첫 오븐은, 지에라(GIERRE)



이것이 지금까지 내 삶의 흐름에 대한 간략한(?) 기록.

이렇게 장황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앞으로 내가 흔들릴 때 다시 보고 정신차리라는 무언의 압박이겠다.

-압박감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겠다고 마음먹었건만... 때로는 채찍질도 필요한 법-


이 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아마 없으실지도ㅋㅋ) 건강하시기를 마음모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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