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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Jan 22. 2022

다음 생에 또 만나겠네!

나이가 드는 건 화가 많아진다는 것일까

엄마 아빠와 이웃이 되면서 다른 형제들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엄마 아빠를 만난다.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다행이지만, 삶이라는 게 일본 영화처럼 그저 유유히 흘러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일주일에 몇 번씩 심리적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어릴 적 그리 다정하셨던 부모님들도 연세가 드시고 체력이 떨어지고 하시면서 서로에게 더 많은 오해와 짜증을 내시곤 한다.

특히 우리 아버지는 청년의 마음으로 매일 운동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일명 '삼식이'다. 반면 아빠의 큰 열정을 오롯이 받아내는 데다 항시 깔끔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 엄마는 하루 종일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아빠의 삼시 세 끼와 간식을 챙기고, 아빠가 운동을 다녀온 옷- 여름엔 텃밭까지 하시니 빨래는 더 많다 - 를 빨고 말리고 개고, 집을 청소한다. 내가 아무리 “엄마, 노동하지 말고 운동을 하세요!”라고 해도 엄마는 “걸레 발로 슬슬 밀고 다니는 게 무슨 노동이니?”라고 한다. 걸레를 발로 밀기만 하나? 깨끗한 걸레를 물에 적셔서 짜고 어느 공간이든 꼼꼼히 발로 밀고 다니고 다시 그 걸레를 빨아 너는것까지가 일인데, 얼마나 힘들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건 엄마의 일이야!”라고 하시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데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노동을 하는 엄마는 점점 체력이 약해지고 해를 보고 산책을 하면서 멜라토닌을 생성하거나 근력을 키울 시간은 더 부족해진다. 그러니 항상 화가 나 있을 수밖에 없다. 아빠는 식사를 드시고 운동을 하고 티브이를 보고 공부를 하면서 개인의 건강을 철저하게 챙기시니 엄마가 왜 매일 짜증이 나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이야기하고 싶어 하신다. 체력 짱짱한 아빠와 항상 지쳐있는 엄마, 이렇게 극과 극에 있는 어른들과 만나는 시간은 이틀에 한번, 저녁 티타임 즈음이다. 어떤 날은 서로 굳은 얼굴로 나만을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 땐 온도가 적당한 집안의 공기도 왠지 더 싸늘한 것 같다. 나도 이젠 딱 안다. ‘아, 오늘은 다툼이 있는 날이었구먼’. 

그런 날은 일부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엄마 아빠가 서로의 입장에서 서운했던 일들을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아빠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부와아악! 하고 화내는 것처럼 느껴져서 당황스럽고 당신을 가스라이팅 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엄마 입장에서 보자면 ‘매번 저 사람이 얄밉게 왜 저럴까!’ 하는 마음이 켜켜이 쌓여서 폭발의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처음엔 중재를 하려고도 했고, 해결하지 못할까 봐 나도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형제들에게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왜 나한테만 이런 문제를 맡겨두고 지들은 지 가족들이랑 즐겁게 사나? 나도 당당한 한 집의 가장이라고! 내가 혼자 산다고 그냥 부모님을 턱 맡겨놓나?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 형제들 중에선 내가 제일 예민하고 걱정 많은 성격이고 나머지 1,3번 형제(내가 2번이다)는 좋게 말하면 실제로 문제가 일어나기 전까진 여유를 부리는 성격들이라 매번 그 부분이 부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먼저 엉덩이 떼는 사람이 책임지는 이 사회의 구조속에서 내가 나서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머릿속으로는 프로세스가 돌아가고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걸 어쩌랴.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조금은 억울하고,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는 내 언니와 동생이 부럽다.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 부모님이 각자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하다가 그게 다툼으로 번질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내가 더 목소리 높여 화를 내면서 “진짜 이러기야?!” 하면 두 분 다 좀 자제를 하시긴 하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고 나면  나도 더 짜증이 나서 진짜 부모님 댁에 가기 싫어진다. 부모님한테 화내는 것도 짜증 나고, 피곤한데도 잠시 들른 내 앞에서까지 어른들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다. 내 미래 모습이 저런 거라면 늙고 싶지 않다. 나의 오리진의 바닥을 보는 것 같아서, 어쩌면 다정했던 우리 엄마 아빠도 저렇게 하는데 나는 어디까지 내려갈지 몰라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진다. 이런 식으로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엄마 아빠는 작은 다툼을 하셨다. 들어보면 하등 쓸데없는 걸로 저렇게 화를 내시나? 싶다가도 노인들의 세계가 저렇게 작아지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미래도 저러려나 하는 서글픈 마음도 조금 생겼다. 

한참 싸우고 계실 때 “아이고, 이러다가 다음 생에 또 만나시겠네! 다음 생 부부 당첨!! 하하하!” 해버렸다. 공공의 적이 바뀌면서 자동적으로 싸움이 끝났다.

“다음 생엔 절대 안 만나지!.” 아빠가 말씀하신다. 

“당연하지. 담엔 나, 혼자 살 거야!”엄마도 말씀하신다. 두분의 의견에 합의점이 생겼다. 

“근데 이런 식이면 꼭 또 만나서 천생연분 되실 것 같은데~. 다음 생에 또 결혼하면 나 같은 딸 낳는 거고, 안 만나려면 친하게 지내셔야지. 근데 생각해보면 둘 다 괜찮지 않아? 하하하!” 내가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두 분 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시지만 대략 싸움은 끝난다. 사실 나는 다음 생에 또 태어나는 건 바라지도 않고 있는데, 엄마 아빠를 진정시키려면 이 방법이 제일이다. 목소리를 높이기도 싫고 화를 내는 것도 싫다.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다정했던 우리 엄마 아빠가 왜 저렇게 되었을까 속상하다. 어릴 적 이웃의 아주머니들이 “너희 엄마 아빤 어떻게 저렇게 금슬이 좋니? 저렇게 손잡고 다니는 부부라니, 너희는 좋겠다 얘~”라는 이야기를 너무 자주 들어서 내심 진짜 이상한 아줌마들이라 생각했다. 너무 당연한걸 왜 저렇게 자꾸 물어보는지, 엄마 아빠 다정 비법을 왜 엄마 아빠한테 묻지 않고 나한테 물을까? 같은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다정했던 부부도 세상 풍파에 시달리고 지치고 나이 들어가면서 자꾸만 쓸데없는 일로 다투고 서로에게 눈을 흘기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서로 원수라서가 아니다. 너무 잘 아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아니, 이 정도도 이해 못 해줘?”라는 마음이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들을 보는 것이 더 서글퍼진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능하면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지만 더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커버리면 “그래 이게 우리 본모습이다 어쩔래!”하는 걸까? (근데 그 정도로 오래 연기를 했다면 습관이 되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우리 형제들에게 너무 좋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문제를 즐겁게 해결할 수 있고 강자에게 겁먹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자랐다. 우리 언니는 사랑이 세상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다정한 사람으로 자랐다. 남동생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여유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우리들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우리 조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여자, 남자였는지 꼭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언니와 나와 동생이 항상 느꼈던 당연함과 자부심처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진짜 다정하고 멋진 사람들이에요!" 같은 말을 하면 좋겠다. 마치 엄마 아빠가 우리가 우등생이길,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 부모님이 우등 어르신이 되길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인 걸까? 


우등 어르신이 되는 일일 공부가 있다면 그거라도 시켜드리고 싶다. 

엄마 아빠는 공부하긴 싫으시겠지? 

다정한 두분.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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