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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Feb 01. 2022

조카의 공부

육아 너무 어렵군요.

조카는 이제 많이 자랐다. 

몽글몽글 두부같은 아기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다. 코로나때문에 안타깝게도 마스크를 낀 채로 학교에 다녔지만, 제주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재미있는 초등학생 시기를 잘 보낸것 같아서 내 맘이 다 뿌듯하다. 조카가 지난 크리스마스에 “나, 중학교에 가면 공부 열심히 할거야.”라고 말할때 나와 언니는 눈이 동그래져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공부? 공부라니.. 공부를 시킨적이 없는데 얘가 왠일인가! 조카의 엄마, 우리언니는 공부보다는 건강하게 잘 놀며 크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엄마라서 특별히 공부를 많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생각하게 된건지 궁금하고 놀라웠다.


조카가 설을 지내러 파주에 오고, 주변의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지인들과 올케에게 물어서 계획을 짰다. 물론 언니가 조카의 문제집을 모두 가지고 와서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언니는 즐겁게 늘렁이며 사는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익힌 무우처럼 부드럽고 슴슴하지만 편안한 느낌이다. 나는 정반대로 뭐든지 좀 급하고 계획을 빨리 짜고 실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빨리 수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겨자같은 성격이다. 

성격대로 조카의 공부계획도 열심히 짰다. 공부 양을 은근히 늘렸다. 준비할게 너무 많아 어쩔수가 없다. 어려울법도 한데 투덜대지 않고 집중해서 공부하는것이 기특했다. 어느순간 왜이리 숙제가 많냐며 사내녀석이 징징대고 몸을 비비꼬다가 엉엉 울면서 문제를 푼다. 저녁에는 “힘들었지만 배운것이 있어서 뿌듯해!” 하며 달러구트 백화점을 읽다가 잠든다. 공부를 하는 만큼 게임도 열심히 하도록 둔다. 저녁마다 친구들과 줌으로 만나고 게임안에서 논다. 야외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이렇게 앉아서만 노는것이 속상한데, 어쩔수가 없다. 

언니는 아들이 나랑 더 잘통하는것이 더러 서운하기도 한 모양이다. 사춘기가 시작되어 엄마랑 이야기하는것 보단 혼자있는게 좋고, 친구에 집중하고 심통만 늘었었다는데, 나한테 와서는 착한 어린이 모드로 시키는 공부를 하고 자기 일도 착착 알아서 하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묘한 마음을 만드나보다. 나도 톡톡 쏘는 말들로 애가 한참 성장할때인데 왜 이런준비도 안해주었냐며 그렇잖아도 언니 마음속에 찔리는 부분을 후벼 파니, 더 속상한것 같다. 나도 조카를 돌보면서 피로감이 생기고 또 신년계획이 조카에게 집중되다보니 스트레스가 있어서 더더더 언니를 갈구는 모양새가 된다. 언니가 미리 계획을 세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내 삶의 방향을 세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렇게 있어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지금 뭐가 중요할까, 나의 미래? 조카의 미래? 둘 다 중요해서 우선순위 매기기도 어렵다. 일단 조카를 도와서 같이 공부하는걸로 결정했다. 그래놓고 언니한테 자꾸만 투덜투덜 하는 내가 좀 못되먹었다는 반성도 한다. 



저녁 공부중 간식, 오늘은 오뚜기 쇠고기 스프다.


조카의 공부는 학원대신 EBS인강으로 같이 공부해가며 배우면서 공부습관을 만들어주고 새로 배우는 교과과정에 너무 겁먹지 않을 정도만 같이 공부해보는것으로 맘먹고 시작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예비 중학과정 문제집을 사왔는데, 첫 단원부터 너무 어려운 문제가 나와서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좀 화가 났다. 아무리 변별력을 키우는게 좋다지만, 이러면 학원을 다니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을것 같아서다. 우리 조카는 이모가 있지만, 아무도 없이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이 이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EBS에서 강의하는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고서야 조금 안심했지만, 혼자 크는 아이들이 집중해서 이런 공부과정을 쭈욱 듣고 따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또 든다. 나는 요즘 조카의 공부에 하루를 다 쓰고 있다. 아침을 간단하게 지어먹이면서 시작되는 공부는 점심까지 계속되고 오후에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또 이어진다. 

조카네 동네의 아이들은 벌써 수업 하나당 몇시간씩 공부하고 여러 과목을 이어서 강의하는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우리 조카는 노는데 익숙해져서 한시간 즈음 되면 몸을 비비꼬고 여기저기를 벅벅 긁고있다. 나의 중학시절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그런건 화도 나지 않는다. 어른들이 어려운걸 자꾸 시키니 아이들이 어른처럼 큰다. 좀 쉬운걸로, 그대신 생각하고 고민해보고 자기 의견 말하는 공부를 시키면 더 좋은 세상이 될거같은데 공식 넣고 풀기만 하면 되는 문제들만 많다. 그런게 채점하기 편하니까, 곤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싶지 않으니까 그런거지 뭐. 

어른들이 하는 짓이 다 지들 편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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