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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it Apr 02. 2017

씨앗 욕심 그만 내자.

도시농부 농사기

몇 년 동안 텃밭을 빌려서 농사를 해왔지만, 빌려 농사짓는 텃밭에는 프로페셔널한 농부가 계셔서 항상 어떤 시기에 뭘 심고 잡초를 언제 뽑아야 하는지 알려주시니까 별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처음엔 그냥 화훼시장에서 씨앗을 사서 농사를 했었지만 몇 년 농사를 하면서 토종씨앗이나 GMO 작물, 식품에 대한 생각도 더 깊게 해볼 기회들이 생겼습니다. 토종 종자를 잘 가꾸고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기도 했고, 마침 비슷한 시기에 토종 씨앗과 종자를 보존하고자 하는 분들을 여러 루트로 알게 되었어요.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이것저것 씨앗 구하러 다니고, 또 얻은 씨앗들을 바라보면서 혹시 모자라진 않을까? 걱정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 1년 농사를 지어보니 저는 아직 씨앗 욕심을 내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것저것 많이 얻어온 씨앗들을 다 심지도 못했고, 심은 작물들을 잘 키워내지도 못했습니다. 마당의 나무 때문에 그늘이 생겨서 딸기와 바질이 작게 자랐는데,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무가 오디나무라서 뽑지 못했고 거름 주는 시기를 놓쳐서 살구나무와 대추나무의 열매들도 몇 개 얻지 못했습니다. 땅의 상태를 모른 채로 심었던 작물들은 비실비실 - 전에도 이야기했던 상추마저도- 크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작년 가을엔 아무것도 솎아주지 않고 잘라주지 않아서 집 마당이 거의 흉가 수준으로 - 저는 되게 맘에 드는 야생의 느낌이었는데 친구는 그게 바로 흉가 느낌인 거라고 하더군요- 되어버렸어요. 잘 키우지도 못했고 마지막 관리까지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거죠.


제가 처음 토종씨앗을 구하러 다니면서 봤던 정말 싫었던 광경이 있습니다. 토종씨앗을 나누는 분들은 정말 좋은 마음으로 씨앗을 나누시는데요,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정말 비닐봉지에 꽉 채우고 또 채우면서 씨를 담고 계셨습니다. 그 아주머님이 한 천평 되는 밭에 저걸 심으시려고 그러나? 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게다가 그분의 스카프 끝자락이 접시마다 담아둔 씨앗들을 스치면서 모든 씨앗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저런 마음으로 농사는 어떻게 지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의를 못 참는 저는 '저기요, 스카프 때문에 씨앗이 다 섞이고 있어요'라고 몇 번 말했지만 그 아주머님은 정말 들은 체도 안 하시고 씨앗만 봉투 가득 담으시더라고요. 그 아주머니는 그 씨앗을 어디에 심으셨을까, 또 저딴 마음으로 농사를 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을 했습니다. 토종씨앗을 생각하면 항상 그 아주머님의 스카프가 생각나는걸 보면 저에겐 그 사건이 트라우마가 된 것 같네요.


농사를 해보면서 농사를 배운다는 것은 인생을 배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에 벼락치기로는 절대 배울 수 없고, 자연을 느끼는 경험, 부지런히 상태를 관찰하고 돌봐주는 생활, 배우고 기억하며 몸으로 익혀야 하는 다양한 지혜가 꾸준히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하는 거더라고요.


이런저런 여러 가지 경험과 생각으로 올해는 씨앗 욕심도 좀 줄여보려고 합니다.

씨앗마다 작물마다 심어주어야 하는 시기, 관리해줄 시기가 다 다른데 올해는 욕심 안 부리고 찬찬히 하나하나 배우는 마음으로 잘 해보려고요. 그리고 가능하면 토종작물 위주로 심어서, 몇 가지 작물은 채종을 하고 씨앗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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