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찾기 여정
응급실에서 쫓겨나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산부인과 이슈와 별개로 이미 살고 싶지 않아 계속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통증과 끝없는 출혈에 정말 왜 이러고 사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렇게 지내다 10월 중순에 시작된 생리가 11월이 되어도 끝나지 않아 B 대학병원을 다시 찾았고, 초음파상으로는 근종밖에 안 보이는데, 너무 힘들어하니 문제가 분명히 있겠다고 하며 MRI를 찍어보자 하셨다. 대학병원 MRI는 예약이 너무 어려웠다. 몇 주를 기다리던 어느 날 밤, 피를 쏟다가 숨이 차고 온몸이 떨리고 어지러웠다. B 병원 응급실에 전화했으나 받아줄 수가 없다 한다. 그나마 가까운 C 대학병원 응급실에 전화했더니 일단 오라고 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갔는데,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결국은 진료를 보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쫓겨나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다음날이 되자 출혈이 조금 멈추고 정신이 돌아왔다. 이러다 또 출혈이 시작되면 뛰어내릴 것 같았다. 원인을 빨리 알아야 했다. B 대학병원 MRI를 포기하고 당일 MRI를 찍을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로컬의 D 병원을 찾았다. 대학병원에서 수술 이력도 많은 원장님이 있어 일단 믿고 예약 전화를 거의 울면서 했다. 살려달라고.
결국 D 병원에서 MRI를 찍었고 원장님의 진단은 역시 점막하근종, 완전한 제거를 위해 복강경이나 로봇수술을 권하셨다. 위치가 안 좋으므로 로봇으로 제거하고 꼼꼼하게 꿰매는 것을 추천하셔서 후기를 믿고 일단 수술 예약을 잡아버렸다.
수술 예약을 해놓으니 홀가분하면서도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다. 너무 급하게 결정한 것은 아닐까. 로컬에서 수술해도 정말 괜찮을까. 그때부터 MRI CD를 들고 병원 투어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산부인과로 유명한 E 병원을 찾았더니 자궁경으로 충분히 수술할 수 있겠다 했다. 로봇수술은 오버라면서, 본인 월급 의사라 아무 상관 없다 하는데 신뢰가 1도 가지 않았다. 이미 자궁경으로 한 번 제거하면서 온전히 제거할 수 없었다고 한 건 데, 자궁경으로 완전 제거가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B 병원 예약도 이미 잡혀있었기 때문에 B 병원에서 수술하자고 하면 할 생각이었지만, 대학병원 고려를 하며 그제야 친구 생각이 났다. 연락했더니 얼른 CD를 가져오란다. 아플 때만 친구를 찾는 듯하여 미안했지만, 의사인 친구는 의사 친구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니겠냐며, 병원으로 오라 해 MRI를 꼼꼼히 봐줬다. 첫 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MRI 왜 이렇게 거지같이 찍어놨지? 기계는 좋은데, 찍힌 게 엉망이란다. 당황스러웠다. 허리 때문에 MRI를 워낙 많이 찍어서 어디나 비슷하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복부/골반 쪽은 MRI를 잘 찍기가 어렵단다. 본인한테 미리 연락하지, 하며 안타까워하던 내 친구 교수님. 내가 정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급한 맘에 되는대로 가서 찍었다고 했다. 어쩌겠니...
MRI 상태가 안 좋아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잘 안 보이지만 우선 MRI 상으로 수술해야 할 것 같고 로봇수술 결정은 잘했는데, 병원은 대학병원을 가는 것이 좋겠다 했다. 2주 후 B 대학병원 예약이 되어있다고 하니 교수님 검색을 해보고 괜찮겠다고 해줬지만, 나는 마음이 급했다. 복직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었고, 최대한 수술을 빨리 해야 회복도 빨리할 수 있겠다 싶었다.
병원 다니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 주에 F 대학병원을 예약하여 다녀왔다. 생긴 지 5년쯤 된 병원이라 그런지 깔끔하고 전반적인 시스템도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동네가 익숙해서 그 와중에 웃음이 나왔다.
교수님은 MRI를 먼저 보시더니, 근종은 출혈의 원인이 맞는데 통증은 확실하지 않다며 초음파도 보자 하셨다. B 대학병원 같은 경우 초음파 선생님이 완전히 따로 있었고 교수님은 사진만 보셔서 여기도 그런 줄 알았는데, F 대학병원은 다른 선생님이 초음파를 꼼꼼하게 보시더니 교수님이 곧 오실 거라며 기다리란다. 근 2년 동안 초음파를 정말 질리도록 해서 아무 생각도 없고 그냥 멍했는데, 교수님이 오셔서 더 자세히 꼼꼼하게 초음파를 봐주셨다. 그렇게 세세히 봐주시는 의사 선생님은 처음 겪었다. 물론 너무 자세히 보셔서 꽤 아팠지만 버틸 수 있었다.
수술은 필요하고 자궁이 크긴 해서 선근증이 의심된다. 미레나는 우선 수술하면서 빼고 수술하고 다시 넣어보자 하셨다. 수술은 자궁경으로도 해볼 수는 있겠지만, 수술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 본인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시길래 로봇수술로 결정이 났다. 이미 비용도 그렇고, 실비도 알아봤고 검색을 많이 해봤기에 결정이 아주 어렵진 않았다.
점막하근종 2cm는 단일공 로봇수술로 제거하기로 했고, 언제 생겼는지 모를 폴립(용종)은 자궁경으로 제거하겠다고 하셨다. 수술 날짜는 가장 빠른 12/16로 잡고, 아무것도 안 먹고 간 덕분에 다행히 채혈 등 일부 검사는 그날 다 진행할 수 있었다.
F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확정하고 B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가니, 교수님이 이건 아주 고약한 근종이라며 열고 꺼내야 한다고 당연히 로봇수술을 이야기하셨다. 수술 날짜 제일 빠른 게 12/9라 고민은 했지만, 결국 F 대학병원 수술로 마음을 굳혔다. 폴립 등 더 자세하게, 그것도 교수님이 직접 봐주신 건 F 병원이었기 때문에 별로 선택이 어렵지도 않았다. 마침, 그날 F 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는데 조영제를 넣기 위한 바늘을 꽂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환자가 된 듯 기분이 이상했다.
18년에 허리 수술을 받고 난 후, 10년 안에 재수술이 필요할 것이라 해서 당연히 또 수술하게 된다면 허리 수술이라 생각했다. 주변에 많은 이들이 근종 때문에 고생하고 수술했지만, 내가 자궁 수술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 결국 이게 결과인가 싶었다.
CT 결과를 보는 것도 걱정됐다. 속이 하도 안 좋으니 어디 또 망가진 곳이 있을까 불안에 떨며 수술 전 외래를 갔다. 다행히 다른 이상은 없기에, 12/16에 수술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
수술 전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쉬면서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입원하는 날이 다가왔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