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하는 날
이곳은 분명 논이었는데. 나는 지금 논 위에 머무는 건가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그날이 왔다. 입원해야 하는 날. 병실 배정과 입원 시간을 입원 날에 별도로 안내해 준다고 하여 아침부터 일어나서 알람을 기다렸다. 다행히 원하는 병실에 배정이 되었고, 4시 반까지 입원하라는 알람을 받았다. 아침부터 긴장하며 일어나 있었는데 시간이 남으니 그저 멍하니 입원 준비하던 일을 떠올렸다.
4박 5일 입원을 안내받았기 때문에 짐 싸는 것도 일이었다. 물론 수술 후 한방병원에 입원하여 요양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짐까지 싸니 엄청났다. 그동안의 입원은 다 급하게 수술하느라 내가 직접 짐을 싸지 않았기에 계획된 입원에 맞춰 준비를 하니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어차피 씻지 못할 테니 온갖 물티슈를 다 집어넣고, 생리대를 잔뜩 챙기니 벌써 짐이 한가득이다. 이것만 봐도 확실히 여행가는 짐은 아니었다. 캐리어를 한가득 채우고 나니 그제야 당분간 집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헛헛했다. 퇴원해도 뭔가를 하기는 어렵겠다 싶어 최대한 집을 정리했다. 당분간이라 생각했지만,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출발할 시간이 됐다. 힘들게 싸놓았던 캐리어를 들고 남자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모교가 보여 사진부터 찍었다. 병실에서 학교가 보이면 진짜 웃기겠다는 농담을 하며 꽤 밝은 척을 했던 듯하다. 그리고 수술하면 한동안 못 먹을 것 같아 아아를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내 병에 그렇게 안 좋은 거란다. 슬픈 현실이다.
4박5일을 머무를 숙소를 배정받고, 병동으로 올라가 키와 몸무게부터 재고 각종 사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뒤 병실로 향했다. 산부인과 수술이라 그런지 원피스형 옷을 받아 들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 와중에 민트색 옷이 맘에 들었는데, 입고 보니 영락없는 환자 모습이었다. 나름 여름 원피스라고 생각하면서 위안했다.
병실이 답답하여 병동을 한 바퀴 돌아보기도 하고, 휴게실에서 모교의 모습을 봤다. 3년 동안 아름답게 보던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곳은 분명 논이었는데. 나는 지금 논 위에 머무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학창 시절의 모습이 생각나 웃프기도 했다.
수술 전 마지막 식사로 죽을 줬다. 반도 못 먹었던 거 같다. 다음 날 수술 시작 시각이 그리 늦어질 줄 알았다면 많이 많이 먹을걸. 환자복을 입고 병원 침대에 앉아 죽을 먹고 있으니 입원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남친을 보내고 병실에 누워있으니, 주삿바늘도 꽂고, 항생제 테스트도 했다. 그로써 더더욱 입원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다른 수술 후기를 보면 관장을 하거나 제모를 하기도 한다는데 내가 겪은 건 배꼽 밑에 수술 부위를 표시하는 작은 동그라미 하나뿐이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집에서 괜히 면도기로 일부를 밀어놓아서 간지러운 것이 괴로웠지만 말이다. 혹시 수술하는 분들 계시면 제모나 관장은 입원 전에 미리 물어보도록 하자.
첫 수술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술 시작 시각은 알 수가 없다 했다. 10시부터는 물도 먹지 말라 해서 그 전에 물을 거의 2L를 마셔댔다. 실제로 다음 날까지 기다리며 가장 힘들었던 게 목마름이었다. 저녁을 너무 적게 먹은 탓에 배는 고프고, 수액은 불편하고, 침대도 공간도 낯설고 밤새 뒤척이며 하루가 지나갔다.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