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 고생기 4 - 4시간의 여정

수술하던 날

by 해성


그러니까, 막상 열어보니 몰랐던 것들이 드러난 것이다.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 III. 4박5일 숙소 입성 https://brunch.co.kr/@veilstella/5



# IV. 4시간의 여정


수술 날, 12/16은 정말 긴 하루였다. 전신마취 탓에 기억력이 더 감퇴하기 전에, 당일에 적어놨던 메모 덕분에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밤새 뒤척였다. 주변의 소음과 나의 불안과 그걸 지켜보는 낯선 천장. 병동의 일과는 5시~5시 반부터 시작된다. (나중엔 4시 반에 시작하는 것도 경험했다) 혈압과 체온을 재고, 잠시 재우는가 싶으면 뭔가를 또 하러 오는데 같은 병실을 쓰는 분과 맡은 간호사가 달라서 매번 시간이 다르다.

한 번 깨니 잠은 안 오고, 수술은 언제 들어갈지 모르겠고, 남들이 먹는 밥 냄새가 싫어 휴게실에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엄마가 9시40분쯤 왔다. 병실에 있기가 너무 답답해서 휴게실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물을 못 먹는데 계속 떠들려니 목말라서 혼났다. 빨리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외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11시 56분이 되어 오후로 넘어가겠다 싶었는데 12시에 간호사쌤이 전화를 받는 게 귀에 꽂혔다.


'OOO 환자분 수술실 어쩌고저쩌고'


후다닥 병실로 돌아가 수술실 갈 준비를 마저 하는데 그때부터 심장이 떨렸다. 불안함이 밀려오는 그 기분 나쁜 무언가를 뒤로한 채 휠체어를 타고 3층 수술실로 갔다. 휠체어를 타본 것 자체가 처음이라 신기했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 놀라기도 하고. 그때만 해도 딱히 아픈 곳이 없는데, 휠체어에 실려 가려니 뭔가 어색했다. 허리가 아파 수술할 때도 걸을 수 있다고 하니 걸어서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병원마다 정말 정책이 다 다르구나. 같은 병동에서 두 명이 같이 갔는데 두 명 휠체어를 한 번에 끄는 이송 기사분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병원에는 숨은 일꾼들이 정말 많은데, 그중에 가장 힘을 많이 쓰는 분들이 이송 기사분들이 아닌가 싶다. 이후 휠체어를 다시는 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다시는 없기를.


수술실 들어가기 전 엄마와는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새도 없이 기사분이 엄마를 대기실로 보내버렸다. 손 인사만 했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허리 수술할 때는 '안아주세요.'라고 했던 거 같은데.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대단하게 있지는 않지만 뭔가 보호자와 인사도 제대로 못 하니 엄마가 더 불안해할 것 같았다. 아픈 건 난데 여전히 난 엄마를 걱정하고 있다.


수술실 입구에 들어가 머리덮개가 씌워지고, 수술 대기실에 커튼으로 하나씩 가려진 칸에 휠체어를 탄 채 주차되었다.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선생님들과, 수술 끝나고 나가는 분들을 보며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도했다. TV에는 수술에 관련된 기도문과 성경 구절들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톨릭이지만, 뭐 똑같은 하느님 믿는 거라 나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채플도 생각났는데 그건 좀 짜증 났네.


수술실 간호사, 산부인과 간호사 쌤이 무슨 수술인지 다시 체크하고, 마취과 쌤이 전신마취와 관련된 설명을 하고 사인을 받아 갔다. 설명대로 수술 후 목이 꽤 불편하여 심호흡을 열심히 해야 했다. 수술을 해주실 교수님이 오셔서 수술에 대해 다시 설명해 주셨다. 내가 받을 수술은 로봇수술로 자궁의 점막하근종 제거, 자궁경으로 자궁 폴립 제거였다.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설명까지 듣고 나니 정말 수술을 하는구나 싶었다. 혹시 수술 중에 다른 병변이 발견되면 같이 제거해 주시나 물으니 자세히 보겠다고 해주셨다.


모든 사인이 끝난 뒤 휠체어를 타고 마취과 쌤과 교수님과 같이 수술실로 갔다. 교수님이 '4번 방이죠?' 하시며 같이 가주시는 것이 뭔가 든든했다. 아, 나는 4번 방에서 수술을 받는구나.


의학 드라마를 아무리 많이 봤어도 수술방은 적응이 안 된다. 사실 적응이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그저 보기만 했을 뿐이니. 수술방은 불빛부터 새하얗고 많은 것이 흰색이었다. 수술대 위에 누워 환자복이 벗겨졌다. 고정 때문에 팔이 묶이는데 오른쪽은 교수님이 직접 묶어주셨다. 그리고 기도해 드릴까요? 물으시는데 그냥 괜찮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계속 안심시켜 주시는 게 감사했다. 후기에서 봤던 노래 신청은 왜 안 받으시지, 의문이 들었고, 사실 지금도 그것이 후회된다. 노래 틀어달라고 하면 틀어주셨으려나? 윤하의 '포인트 니모'를 정말 듣고 싶었는데. 그 와중에 온갖 센서가 몸 군데군데에, 손가락에, 그리고 이마에도 붙여졌다.


졸린 약 들어갈게요.


깨어보니 회복실이었다. 죽을 것 같은 생리통의 무한대 느낌이었다. 정말 괴롭게 아팠다. 그 와중에 심호흡 생각나서 정말 열심히 숨을 쉬었는데 이놈의 복식호흡이 익숙한 나는 배가 움직이자 더 아파져 왔다. 기도 삽관 덕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와중에 '너무 아파요.'를 울부짖었다. 분명 울부짖으며 진통제를 맞았던 거 같은데 도대체가 나아지질 않아 다시 아프다고 울상이 되어 여쭤봤는데 맞은 게 맞단다. 무통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주시고 갔다.


아프고 아프고 너무너무 아프고, 호흡은 해야겠고 깨어있기 위해 정신도 차려야 하고, 몇 분이나 지났을지 시간이 너무 궁금했는데 어딜 봐도 시계는 없었다. 궁금해하다 보니 병실로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벗겨졌던 옷을 대충 팔만 걸친 채 이불 덮고 침대 채로, 병실로 옮겨졌다. 대기실을 지나며 OOO님 보호자님~ 을 불러 같이 올라갔다. 올 때나 갈 때나 뭔가 노룩패스 같은 느낌이었달까.


엄마가 많이 아프지,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봤고 난 지금 몇 시냐를 물었다. 그때가 이미 4시가 넘어있었다. 생각보다 늦게 끝났길래 뭔가 많은 일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엘베를 타고 내릴 때마다 쿵쾅 아파요.

병실로 와서 원래 침대로 넘어오는데 허리 수술 때 '악' 소리 나게 아파 실제로 소리 지른 내가 기억나서 무서웠다. 다행히 그때와는 달리 허리 중심이 있으니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배는 너무 아팠지만, 쌤들 말 들으며 차근차근 옮겨올 만했다.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환자복도 다시 입혀지고 추가 2시간 금식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엄마와 둘이 남겨져서 그때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교수님이 수술에 대해 사진과 실물을 보여주며 설명을 자세히 잘 해주셨다고 했다. 근종을 가져가도 되냐는 엄마의 질문은 정말 모두를 당황하게 했을 듯하다. (엄마가 기억을 다 못해서 회진 때 설명 다시 자세히 들었다)


폰을 달라고 해서 남친에게 연락해 주고 이후로는 대충 엄마와 수다 떨며 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 엄마는 게임하고 난 뭘 했더라. 역시 마취는 좋지 않다. 기억이 잘 안 난다.


중간에 간호조무사 쌤이 와서 압박스타킹도 신겨주셨다. '다리가 두꺼워서 힘드셨죠' 하니 피식 웃으셨다. 잘 안 신겨져서 나중에 내가 열심히 다시 올리긴 했다. 압박스타킹은 혈전 예방을 위해 신는 거라고 한다. 꽤 불편했던 기억이다.

드디어 6시 반, 간호사쌤께 더블 체크하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밥도 왔다. 벌써 밥을 먹어도 되나 싶었는데 밥을 먹는 게 처방이란다. 얼마나 먹었는지도 체크해야 한다고. 깨작거리고 있을 때 교수님이 회진오셨다. 제일 반가운 말은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커피 마셔도 돼요' 였다. 밥은 잘 안 들어갈 테니 많이 안 먹어도 되고 많이 걸으라고 하셨다. 밥이 진짜 너무 안 들어가서 당황스럽긴 했다. 24시간 굶었다고 이 정도인가? 앉아 있으니 배가 아파서 더 먹기가 힘들었을지도. 꽃빵을 못 먹어서 슬펐다. 숙주만 다 먹은 기억이다.


수술 관련 설명은, 먼저 자궁경으로 확인하며 미레나 빼고 폴립 떼고 난소랑 나팔관 물혹을 제거하고 로봇으로 점막하근종을 제거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궁내막증 때문에, 골반에 유착이 심해서 유착을 박리하고, 내막증도 제거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자궁경으로 확인하고 마무리하셨다고. 그러니까, 근종을 제거하려고 수술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몰랐던 것들이 드러난 것이다.


자궁내막증이 생리통의 주원인이라는데 초음파나 CT, MRI에서 보이지 않았던 거라 수술을 안 했으면 계속 모르고 아픈 채 살아갈 뻔했다. 자궁내막증은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고 하셔서 그건 좀 슬펐지만, 원인을 안 게 어딘가 싶었다. 근 25년을 원인도 모를 생리통을 달고 살았던 게 서글프기도… (수술 사진은 나중에 외래 갔을 때 봤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나중에 다시 적어 보는 거로)


밥 먹고 엄마를 보낸 뒤 개인 정비를 조금 했다. 각종 물티슈는 환경에는 안 좋지만, 환자에게는 없어선 안 될 최고의 발명품이다. 얼굴도 닦고 몸도 조금 닦아냈다.

(정리 예쁘게 잘해놨다고 칭찬을 많이 받아서 기분 좋아서 수술날 아침에 찍어놓았던 사진, 입원 생활 내내 유용하게 잘 썼다)

수술 당일엔 남친을 못 볼 줄 알았는데 가장 보고 싶었던 건 남친이라 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사준 커피를 마시며 같이 걷는 시간은 행복했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최고의 진통제이다. 그를 보내고 나니 다시 통증이 심해져서 힘들었다.


수술 후 화장실 가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우선 일어나는 게 정말 힘들었고, 소변량 체크를 한다고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말해야 해서 귀찮기도 했다. 물은 워낙 잘 먹었고 두 번 갈 거 한 번에 가다 보니 양이 꽤 많았다. 밤쯤 되니 이제 체크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다음 날은 당일보다 덜 아프기를 기도하며 무통에게 통증을 부탁하며 잠이 들었다. 사실, 거의 못 잤다.



- 다음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자궁 고생기 3 - 4박5일 숙소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