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 고생기 5 - 수술 후 D+1, D+2

3일의 좀비

by 해성
좀비처럼 병원을 계속 헤맨 것은 아닐까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 III. 4박5일 숙소 입성 https://brunch.co.kr/@veilstella/5

# IV. 4시간의 여정 https://brunch.co.kr/@veilstella/6



# V. 수술 후 D+1, D+2


수술 다음 날, 밤새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 새벽 4시 반부터 채혈을 시작해서 정신이 들기도 전에 일어나야 했다. 결국 새벽부터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처럼 병동을 계속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걸으라는 숙제를 받았으니까. 무통을 눌러가며 계속 돌고 또 돌았다.


그리고 피곤해서 눈 좀 붙일 만하면 계속 누가 와서 잠이란 것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엄마도 와서 지하까지 걸어 다녔다. 근데도 많이 걸으라고 드레싱 갈러 와 준 펠로우쌤께 혼났다. 가스 아직 많이 차 있다고 더 걸으라고. 그때 이미 6천 보 이상을 걸은 상태라 억울했지만 혼났다고 오기가 생겨 열심히 걷고 또 걸어 만 보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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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주사는 알아서 조금씩 들어가지만, 아파서 버튼을 누르면 15분이 지나야 다시 누를 수 있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이기 때문에 어쨌든 양을 조절해 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15분이라는 시간에 대해,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걸어 다니며 아프면 무통을 누르곤 했는데, 15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또 어떻게든 자보려고 하면 15분이 채 지나기 전에 누가 와서, 15분을 자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병동을 계속 한 방향으로만 돌고 또 돌고 있었는데 남친이 와서 방향을 바꿔주니 새로운 세상이었다. 내가 이렇게 융통성이 없나? 싶을 정도로 아파서 바보가 됐나,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 이후에 이렇게도 돌고 저렇게도 돌아보면서 병동 산책이 나름 재밌었다.


병원의 하루는 일찍 시작하는 만큼 마무리하는 시간도 이르다. 분명 그날 밤 10시쯤 잠들었던 거 같은데, 12시 반쯤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다. 오른손 라인에는 또다시 피가 비쳐서 짜증이 솟았다. 짜증을 에너지 삼아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기어나가서 물어보고 돌아와 쓰러지듯 누워있었다. 담당 간호사쌤이 확인하고 오시더니 진통제를 9시쯤 다 맞았기 때문에 지금 더 드릴 수가 없다고 무통으로 버티자 하셨다. 그리고 주사는 왼쪽으로 옮겼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다.


괴로운데 시끄러워서 헤드폰을 끼고 밤새 무통 버튼을 쥐고 잠들었다 깼다 하며 계속 눌러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간호사쌤이 체크하러 왔다가 깨우기가 미안할 정도였다고 한다. 온몸을 웅크리고 무통 주사 버튼을 손에 꼭 쥔 채 버티는 내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처량해 보였나 보다. 그래도 4시 반에 진통제를 추가로 맞고 5시 반이 되자 무통도, 진통제도 끝이 났다. 계속 달고 다녀야 했던 주사가 끝나자, 수액 걸이 없이 자유로워진 손이 좋아 새벽부터 병원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즐거운 시간은 그때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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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다. 무통 때문에 인지를 못 했던 탓일까, 뱃속에 가득 찬 가스가 나를 괴롭게 했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열심히 걷겠다고 슬리퍼 신고 무리를 했는지 물집에 피 나고 발목이 다 나갔다. 평소에 만 보를 걷지도 않던 내가 수술하고 다음 날, 다다음 날 만 보씩 걸었으니… 정말 난 '적당히'를 잘 모르는 인간이다. 그래도 가스가 잘 해결이 안 되어 굉장히 힘들었다.


산책하다가 본 '연명의료 거부 서비스'를 병원에서 신청할 수 있어 신청했다. 인생 어찌 될지 모르는 거니, 전부터 사인하고 싶었는데 나름 기회가 좋았다. 사인하는 곳이 암센터 안에 있는 것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죽음'이란 것이 정말 눈앞에 있다는 걸 선고받은 이들이 사인을 결심할 때의 마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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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며 생각하다가 그리고는 지쳐서 2시간 정도는 기절했다. 남친이 와서 카모마일 티를 마시니 이후에 신호가 와서 4일 만에 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다. 수술 부위를 포함해 배 전체가 아프고, 이 와중에 너무 무리해서 걸었나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걷느라 지치고. 나를 혼낸 펠로우 쌤이 너무너무 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술 직후에 무슨 정신으로 만 보 넘게 걸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무통(펜타닐) 덕분에,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뇌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좀비처럼 병원을 계속 헤맨 것은 아닐까. 왜 펜타닐이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지 의도치 않게 생체실험을 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너무 지쳐 있던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수술과 병원 생활은 너무너무 힘들다고.

KakaoTalk_20250119_161152625_02.jpg (병원 안의 교회. 나는 가톨릭이지만, 어디서든 기도를 하고픈 심정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앞으로 다음의 글이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변경될 수 있음)

몇 편 안될 줄 알고 그냥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네요.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제 병원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VI. 늦어진 퇴원

# VII. 새로운 숙소

# VIII. 다시 찾은 병원

# IX. 38도, CRP 5.25

# X. 혼돈의 19박 20일의 끝

# XI.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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