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프다. 환자다.
너무 부끄러웠고, 또 서러웠다.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 III. 4박5일 숙소 입성 https://brunch.co.kr/@veilstella/5
# IV. 4시간의 여정 https://brunch.co.kr/@veilstella/6
# V. 수술 후 D+1, D+2 https://brunch.co.kr/@veilstella/7
새벽부터 시작하는 아침은 여전했다. 4시 반에 채혈하고, 혈압과 체온을 재고, 6시엔 엑스레이까지 찍고 와야 하는 여정이 계속됐다. 이미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목요일 퇴원 (일요일 입원)이었던 일정이 미뤄지고 있었다. 교수님도 천천히 생각하자고 하셨고, 나도 도저히 퇴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몸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아 걷기도 제대로 못 하고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열이 조금 오르는 거 같더니 머리가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두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하더니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속에 있는 모든 것이 튀어나오려 해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눈물이 저절로 나기 시작했다. 움직일 힘도 호출 벨을 누를 힘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말 엉엉 울었다. 아파서 눈물이 나고 아픈 것이 서러워서 울고. 운다고 나아지는 상태가 아니라 또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기어 나갔다. 저 좀 살려주세요.
(병원기를 쓰다 보니 아프다는 말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사실 나는 통증을 꽤 잘 참는 사람이다. 주사도 잘 맞고, 아파도 이게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냥 좀 참아도 되는지 판단이 어렵다. 이전에 입원했을 때 아프면 절대 참지 말고 이야기를 해달라는 의료진의 말이 있어서 당시엔 이상하면 바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또 판단이 어려웠는데,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바로 몸이 말하는 듯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놀라서 달려오고, 증상을 물어보는데 대답도 하기가 힘들었다. 당시 통증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토하고 속이 쓰리니 위장에 관련된 주사를 놔줬고 두통에는 평소에 맞던 것과 다른 진통제를 맞았다. 혈관으로 직접 들어가는 약의 효과는 속도가 남다르다. 누워서 멍하니 들어가는 약을 보고 있으니 조금 살 것 같았는데 초음파를 보러 가야 한단다.
아주 조금 살아난 것이지 도저히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이송 기사님이 오셔서 휠체어에 태워져 외래 초음파실로 향했다. 평일 오후라 병원에 사람이 정말 많았고, 그 사이를 휠체어로 뚫고 향하는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으려나. 정신이 좀 더 있었으면 마스크를 할 걸 그랬다. 외래 진료실은 꽤 오랜만이었다. 나도 사복을 입고 떨리는 맘으로 진료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는데. 아픈 이들은 여전히 많았다.
교수님을 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초음파 선생님이 봐주셔서 아픈 것에 관한 이야기는 못 하고 병실로 올라왔다. 다행히 교수님은 거의 매일 회진을 오셨는데, 그날 회진 때 퇴원을 월요일쯤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수술한 당일과 다음날 정도까지는 잘 걸어 다니고 상태가 좋아 회복이 빠르다고 좋아하셨는데, 그 이후 계속 상태가 안 좋았기에, 나는 이미 남들보다 회복이 느린 환자가 되어있었다. 교수님도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하셨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무통(펜타닐)은 나를 좀비로 일으켜놨을 뿐이었고, 속은 계속 문드러지고 있던 것이 하나둘씩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날 새벽. 아래가 너무 축축해서 그저 피가 많이 나서 그런 줄 알고 화장실로 향했더니 밤새 괄약근 조절 실패로 엄청난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당시 입는 생리대가 아니었다면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 텐데, 그나마 생리대 덕에 사고의 범위가 넓지 않았다. 정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또 서러웠다. 사람이 얼마나 아프면 이런 일까지 겪어야 하는 걸까.
침대 시트를 갈고 이불을 바꾸고 물티슈로 박박 닦은 뒤 옷을 갈아입었다. 정말 민망하고 서글픈 상황에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저 허허거리며 감사하다 감사하다만 되뇌었다. 입원해 있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구나…
그렇게 너무나 더러운 새벽을 지나 종일 잤다. 그동안 누군가 빼앗아 간 잠을 다시 내게 돌려주기라도 한 듯, 15분도 제대로 잘 수 없던 날이 무색하게 한 번 깨지도 않고 계속 잤다. 중간에 엄마가 왔다 갔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알지 못했다. 내 몸은 잠을 얼마나 필요로 했던 걸까?
그리고 가장 평범한 밤이 지나갔다. 팔에서 주삿바늘도 뺀 상태라 더 편안한 밤. 중간에 깬 것도 참 평범했다. 원래 잘 그랬던 정도로 깬 것. 바늘을 뺀 덕에 새벽에 머리도 감아서 정말 시원했다. 샤워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바디 물티슈 신세를 면할 수가 없어 환자복을 입은 채 머리를 감았다. 그조차 다행이었다. 그리곤 다시 주삿바늘을 꽂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채혈도 엑스레이도 없고, 속은 여전히 쓰리고 두통도 있고 수술한 배는 아프고 기침은 심해지고 있었는데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일단 월요일 퇴원은 확정됐다. 토요일에 회진을 오시리라 생각을 못 해 막상 오셨을 때 이야기를 다 못했는데 퇴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결국 교수님이 가시고 나서 기침을 심하게 하다가 다 토하고, 이걸 어떻게 좀 하고 싶은데 약 처방이 나오지를 않았다. 결국 갖고 있던 스트랩실을 먹었고 나중에 간호사쌤께 말씀드렸더니 먹으면 안 된다고 조금 혼났다. 내가 그 정도로 기침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알리게 된 좋은 계기는 되었지만, 처방 약이 아닌 일반 의약품도 맘대로 먹으면 안 되는 걸 몰랐다.
기침이 힘든 건 다른 것보다 기침할 때마다 배에 힘이 들어가서 수술 부위가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다. 감기 걸린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건조했던 병실과, 토하면서 역류성 식도염이 도진 것이 원인이었던 듯하다. 겨우 기침약 처방이 나와 먹고 나니 조금은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시간 개념이 딱히 없었는데 1주일이라는 시간을 꼬박 병원에 있었다. 맘을 급하게 먹음 안 되겠지만 얼른 낫고 싶었다.
일, 월화수목금토일, F 대학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이 왔다. 첫날 밤은 참 어색했는데, 이젠 익숙한 밤. 1주일 전과는 달리 물도 맘껏 먹을 수 있는 게 소중했다. 기침은 심했다 말았다 해도 전보다는 좋아졌고 배의 통증은 계속 있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걷는 정도도 파악했다. 소화력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왜 때문인지 배가 고프기도 했다.
입원 생활 동안 생각보다 폰을 많이 안 봤고, 뭘 안 듣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며 걸었다. 눕고 걷고 눕고 걷고. 걷기가 왜 좋은지 이해가 되었달까. 그래도 첨에 숙제하듯이 너무 무리한 건 바보짓이었지… 펠로우쌤은 지금도 밉다. 그저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겠지만, 내가 괜찮은지를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닐까.
수술한 지 겨우 1주일인데 내가 환자라는 것을 자꾸 잊고 있었다.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통증이 생기는데 무서웠다. 잊지 말아야지, 나는 아프다.
다음 날은 새로운 곳에 낯선 천장을 구경하러 떠나는 날이었다. 덜 아프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길 바라며 수술한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 다음에 계속
* 앞으로 다음의 글이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변경될 수 있음)
몇 편 안될 줄 알고 그냥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네요.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제 병원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VII. 새로운 숙소
# VIII. 다시 찾은 병원
# IX. 38도, CRP 5.25
# X. 혼돈의 19박 20일의 끝
# XI. 그리고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