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 고생기 7 - 새로운 숙소

한방병원 요양 생활

by 해성
모두가 빨리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 III. 4박5일 숙소 입성 https://brunch.co.kr/@veilstella/5

# IV. 4시간의 여정 https://brunch.co.kr/@veilstella/6

# V. 수술 후 D+1, D+2 https://brunch.co.kr/@veilstella/7

# VI. 7박 8일의 끝자락 https://brunch.co.kr/@veilstella/8


# VII. 새로운 숙소


퇴원 예정일이었지만 퇴원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삿바늘을 빼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퇴원 처방이 나지 않아 나중에 빼주겠다고 해서 샤워의 꿈이 물 건너가고, 아침 일찍부터 드레싱을 갈고 드레싱 교육부터 받고 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초음파를 보러 갔다 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휠체어에 끌려다녔는데, 천천히라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것이 꿈만 같았다. 초음파를 보고 이제 퇴원해도 되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더욱 병원을 나서는 것이 실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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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돈을 수납(로봇수술은 비급여라 비싸다)하고, 각종 서류를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이전부터 예약해 놓은 한방병원에서 픽업 서비스가 있어, 퇴원을 도와주러 온 엄마와 함께 병원 정문으로 데리러 온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 안에서 멍하니 8일 만의 바깥세상을 구경하며 갔다. 한방병원을 예약해 놓았던 건 말 그대로 '요양' 때문이었다. 혼자 살기 때문에 밥 챙겨 먹기가 쉽지 않았고, 난 분명 누워있기만 할 것 같았고, 시 아플 때 급하게라도 처치가 가능할 것 같아서였다. 또, 다양한 치료들이 있어 빠른 회복을 원했던 나는 돈을 조금 쓰더라도 며칠이라도 요양하고 싶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원장님 상담과 상담실의 각종 설명을 듣고 병실로 올라가니 이미 진이 다 빠져있었다. 알게 모르게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배도 땅기고 머리도 아프고 쉽지 않은 하루가 지나갔다. 그나마, 시원하게 샤워하고 누우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2인실이었지만 옆에 아무도 안 계셔서 혼자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잠에 들었다. 피곤이 극에 달해서인지 낯선 곳이었음에도 무난히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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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에서의 일과는 아침밥과 함께 7시 반에 시작했다. 4시 반, 5시 반에 비하면 정말 행복한 기상 시간이었다. 물론 한동안 하도 일찍 일어났더니 며칠은 거의 6시에 깨서 멍때리곤 했다. 미리 짜놓은 치료 일정이 있어 아침에 날아오는 카톡을 보고 해당 일정에 맞게 침 치료, 도수치료, 산소챔버 등을 계속 받았다. 중간중간 영양주사도 맞고, 되도록 식사 후에는 열심히 걸으며 6천 보는 채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매일 끼니마다 진수성찬이 차려졌는데 소화 기능이 돌아오지 않아 마지막 날까지 반도 제대로 못 먹은 건 아쉬웠다.

KakaoTalk_20250120_152614915_01.jpg (정말 잘 나왔던 밥)

새로운 숙소 입소 다음 날, 부모님이 딸기와 사과를 전달해 주러 오셨는데, 그날 엄마가 우셨다. 덕분에 나도 눈물이 조금 났다. 아빠 말씀으로는 퇴원과 입원을 하는 내 모습이,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 집에서도 많이 우셨다 한다. 딸내미 죽을까 봐 걱정하셨다나. 정말 아픈 건 나고, 열심히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힘든 난 막상 엄마 앞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데, 괜찮을 거라고 왜 내가 엄마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인 걸까. 나의 가장 큰 트라우마에 대해 언젠가는 글로 남길지 모르겠지만, 정말 쉽지 않은 모녀 관계다.


중간에 크리스마스가 있어 밖에서 밥을 먹으려 잠시 외출도 해보고, 주말에는 집에도 잠시 다녀올 수 있었다. 내 집, 내 침대가 너무나 그리웠는데,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하룻밤이라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집에서 씻는 것이 최고였다. 그 와중에 이것저것 정리하고 빨래 돌리고 집안일은 끝이 없다는 걸 느끼며 한방병원 요양 선택은 잘한 일이라고 나를 칭찬해 봤다.

KakaoTalk_20250120_153134897.jpg (도수 선생님 와이프께서 재능기부 해주신 키링. 크리스마스 선물에 감사했다)

돌아가는 일상은 비슷했고, 병원 내 산책을 하다 보니 과일을 챙겨 면회 오는 남편, 아픈 엄마를 부르며 안기는 딸, 수술을 위해 퇴원하는 분들 등등 세상에 아픈 사람은 왜 이리 많은지, 모두가 빨리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하루하루 나아지는 건 분명한데 급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무서웠다. 조금만 무리하면 바로 몸이 신호를 보냈고, 그럴 때마다 바로 누워서 최대한 나를 쉬게 해주려고 애썼다.



- 다음에 계속


* 앞으로 다음의 글이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변경될 수 있음)

몇 편 안될 줄 알고 그냥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네요.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제 병원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VIII. 다시 찾은 병원

# IX. 38도, CRP 5.25

# X. 혼돈의 19박 20일의 끝

# XI.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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