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첫 외래
최소 10년을 이러고 살아야 하는 게 말이 되나…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 III. 4박5일 숙소 입성 https://brunch.co.kr/@veilstella/5
# IV. 4시간의 여정 https://brunch.co.kr/@veilstella/6
# V. 수술 후 D+1, D+2 https://brunch.co.kr/@veilstella/7
# VI. 7박 8일의 끝자락 https://brunch.co.kr/@veilstella/8
# VII. 새로운 숙소 https://brunch.co.kr/@veilstella/9
퇴원 후 첫 외래가 있던 날이었다. 외래 진료도 한방병원에서 데려다주는 서비스가 있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출발도 이른 편이라 진료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 예정이었는데, 차 타고 가는 도중에 70분 진료 지연 문자를 받았다. 아 이럴 줄 알았다. 원래 교수님이 진료를 세심히 꼼꼼하게 봐주시고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후 진료를 받은 건 처음이라 이 정도로 늦어질 줄은 몰랐다.
전날 문의 사항을 적어 보며 가장 걱정되었던 건 조직검사 결과였다. 원래 수술을 진행하려던 내용보다 제거한 병변이 많았고 (#4시간의 여정 https://brunch.co.kr/@veilstella/6 참고) 특히 내막증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출혈과 통증이 계속되자 괜한 두려움에 불안했다. 누워서 검색을 계속 해본 것이 더 악영향을 미쳤다. 계속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기억나며, 호르몬제에 극도로 민감한 내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도 걱정됐다.
일찍 도착한 김에 보험사에 필요할지도 몰라 의무기록 사본 증명서를 신청해 받아보았다. 초진 기록지, CT 판독지, 피검사 결과 등만 신청하려고 했는데, 담당자가 보험사에 제출하려면 그냥 전부 다 뽑아주겠다고 해서 외래 진료 기록부터 수술 동안 검사한 모든 기록을 받아볼 수 있었다. 온갖 의학용어가 난무하는 기록지 안에서 '병리 검사 결과'를 발견하여 얼른 번역기를 돌렸다. 진료 들어가기 전에 모두 양성이라는 결과를 알게 된 것은 기다리는 시간을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했다.
1시간쯤 대기를 예상했건만 실제로는 2시간 가까이 기다려 진료를 봤다. 당시에는 30분 정도만 앉아 있어도 배가 땅겨서 괴로울 때라 대기 시간 동안 병을 더 키우는 기분이었다. 무슨 티익스프레스도 아니고, 즐거운 상황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라 마음만 더 구겨지고 있었다.
대기시간이 계속 15분씩 지연되면서 15분이란 시간에 대해 또 생각해 보게 됐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를 부탁해' 에서는 각 쉐프가 15분 만에 음식을 완성하던데, 내가 대기한 시간만 생각하면 무려 8가지 음식이 나올 시간이다. 15분은 무통 주사를 누르기 위해 기다리던 통증을 참아내던 시간이며, 15분이라도 자고 싶었던 병원 침대에서의 기억이었는데, 병원 대기 시간이 한없이 늘어가는 시간이란 의미도 추가되었다. 또 어떤 의미가 추가되려나, 이건 나중에 따로 한번 남겨봐야겠다.
드디어 OOO님 이름이 불렸다. 네!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환자 확인을 한 뒤 진료실로 들어갔다. 퇴원 후 첫 외래이니 괜찮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였고, 자동으로 '아파요.'라고 답했다. 기다리느라 더 힘들었겠다며 진료가 시작되었다. 이때 수술 사진을 처음으로 봤다. 로봇수술이라 사진이 너무나 선명하고 크고 정확했다.
사진을 보면서 들은 교수님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기존 계획대로 자궁경으로 자궁 내막의 폴립을 제거했다. 로봇 카메라를 이용해 복강 내부 장기들을 한번 쫙 훑어보셨고 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발견된 것이 골반 내에 심각한 유착이었다. 골반 내에 자궁과 자궁 천골 인대가 심하게 유착되어 있어 박리했다. 유착이 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장기들이 내려와도 떨어져 나갈 수 있게 (유착 방지를 위해) 막을 씌워 놓았다. 오른쪽 난소의 물혹은 제거하진 않고 물만 빼냈고. 왼쪽 난관 주위의 1cm 물혹을 제거했다. 그다음 근종 제거를 하고, 자궁경으로 수술 부위를 재확인한 뒤 차례차례 꿰매고 수술을 마무리했다.'
근종을 보니 2cm가 생각보다 더 커 보였다. 다른 이들은 훨씬 큰 근종이 있어도 증상 없이 살아간다는데, 나는 위치가 정말 아름다운 근종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얗고 동그란 근종을 떼어내는 과정을 보니 신기했다. 그것만 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머지 수술 과정 사진 속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었다. (깨끗하면 어떤지는 잘 몰라 방금 이미지 검색을 해보았는데 괜히 봤다…)
어차피 내가 갖고 있던 자궁 내막증과 유착 상황 등은 초음파/CT/MRI에서 안 보일 상태라 배를 열어봐서 확인하고 병변들을 전부 제거할 수 있던 것은 다행이었지만, 난 그저 멍했다. 내막증은 계속 재발할 것이고 수술 아니면 약밖에 없다는 말에 절망했다. 내가 수술을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에 교수님이 수술을 다시는 하지 말자고 하셨다. 그럼 약을 먹어야 하잖아…
먹을 것이나 생활에서 주의할 것이 있는지 여쭤봤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요즘 내막증 환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상황은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GPT에게 논문을 검색해달라고 도움을 받아보았지만, 도대체 자궁 내막 조직이 자궁 외부 엉뚱한 곳에 날아가 붙어있는지는 확실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생리량이 너무 많아 역류했나 싶었을 뿐.
수술 부위를 봉합했던 본드를 제거하고, 먹던 약, 바를 약, 한 달 동안 먹을 영양제도 처방받고, 회사와 보험사에 제출할 진단서를 요청한 뒤 한 달 후를 기약했다. 내막증 치료 방향은 그때 정하기로 하고 진료실을 나섰다. 근종을 제거하러 갔다가 병을 새롭게 얻은 느낌이라 서러웠다. 미리 알았으면 재발할 일도 없게 자궁이며 난소며 다 제거해달라고 했을 듯하다. 최소 10년을 이러고 살아야 하는 게 말이 되나… 한없는 우울함에 무슨 사진을 봤었는지 머릿속에서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외래 진료 결과에 대해 엄마와 통화하니 엄마는 끝없이 내 탓을 했다. 아니 확실한 원인이 없다고, 의사도 평소대로 생활하라고 하는데 엄마가 왜? 이미 너무 서러웠고, 내 몸이 아픈 것도 걱정되고 두려움에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큰 공격을 받으니,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이미 시간이 7시가 다 되어 병원의 업무도 외부 약국의 업무도 끝나가고 있었다. 약국은 많았지만, 문을 유일하게 연 세 번째 약국에서 겨우 처방 약을 받아 들고 한방병원으로 돌아왔다. 길고도 험난한 하루였다.
수술 전 진단
자궁의 점막하 평활근종 (D25.0)
수술 후 최종 진단
자궁의 점막하 평활근종 (D25.0)
자궁체부의 폴립 (N84.0)
난소, 난관 및 넓은인대의 기타 비염증성 장애 (N83.8)
골반복막의 자궁내막증 (N80.3)
하나로 시작했던 수술 덕에 진단명이 4개가 된 것이 참…
- 다음에 계속
* 거의 다 왔네요. 앞으로 다음의 글이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변경될 수 있음)
몇 편 안될 줄 알고 그냥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네요.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제 병원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IX. 38도, CRP 5.25
# X. 혼돈의 19박 20일의 끝
# XI. 그리고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