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 고생기 9 - 38.8℃

퇴원과 응급실과 입원

by 해성
또 입원이라고? 에이 설마, 약 좀 맞다가 가면 되겠지.

뭔가 평소 같지 않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여자라면 더. 나는 원래 내가 통증을 잘 참아서 모두가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 본 산부인과만 5곳이 넘었고, 제대로 진단한 곳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버티라 했는데,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서 정말 좋은 교수님을 만나 수술하고 현재 회복 중이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성가시고 괴로웠던 기억을 한 번 꺼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정리하는 동안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 I. 첫 진단, 첫 수술 https://brunch.co.kr/@veilstella/3

# II. 심각해지는 증상들 https://brunch.co.kr/@veilstella/4

# III. 4박5일 숙소 입성 https://brunch.co.kr/@veilstella/5

# IV. 4시간의 여정 https://brunch.co.kr/@veilstella/6

# V. 수술 후 D+1, D+2 https://brunch.co.kr/@veilstella/7

# VI. 7박 8일의 끝자락 https://brunch.co.kr/@veilstella/8

# VII. 새로운 숙소 https://brunch.co.kr/@veilstella/9

# VIII. 다시 찾은 병원 https://brunch.co.kr/@veilstella/10


# IX. 38.8℃

한방병원 퇴원을 하루 앞둔 월요일, 아침부터 뭔가 상태가 이상했다. (이날은 너무 아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뒤죽박죽이다. 일단은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병결 때문에 회사에 연락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이 이상하게 반응하는구나 싶었고 다음 날 퇴원을 위한 진료까지 마치는 등 오전은 그럭저럭 무사히 보냈다.


오후 3시쯤 되자 체기가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마어마한 두통이 같이 왔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몇 번을 게워 내고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가서 너무 힘들다고 얘기했다. 그때만 해도 체온은 정상이었으나 산소포화도가 올라오지 않고 무엇 보다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간호사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병실로 돌아와 누우니 담당 한의사쌤이 오셔서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따기 시작했다. 각각의 엄지, 검지 총 여덟 군데를 땄으나 피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아마 피를 내보낼 기운도 없던 게 아닌가 싶다.

소화제도 먹고 누워서 쉬었으나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오한과 함께 열이 치솟기 시작했다. 급기야 다른 의사쌤이 오셔서 진찰하고 각종 진통제, 해열제, 소화제 등을 수액으로 처방했다. 오한과 몸살이 그 도로 끔찍했던 건 코로나, 독감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보다도 더 괴롭게 느껴졌던 건 약을 직접 혈관으로 넣고 있는데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양을 공급해 주는 것도 수액으로 맞으며 누워서 괴로워했다. 오한이 심해 나는 너무 추운데 열난다고 이불도 덮지 못한 채 더웠다 춥기를 반복하며 기절했다 잠시 깼다를 반복했다. 당시 병실은 3층이었는데 7층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렇지만 올라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밤새 진통제 해열제를 번갈아 가며 맞았으나 열은 계속 떨어지지 않았다. 가장 많이 올라갔던 수치가 38.8℃였던 거 같은데 38℃ 아래위를 계속 맴돌았던 거 같다. 잠을 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는 밤이 지나가고 새벽, 밤새 나를 봐준 간호사쌤이 걱정을 많이 하시며 본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극악의 밤을 보내고 마침 새로 맞이한 아침은 퇴원 날이었고, 8시가 되자마자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 설명을 하니 진료 시간이 8시 반부터라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다.


멍하니 누워 기다린 지 40분, 응급실로 방문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고 싶었으나 막상 혼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남친에게 SOS를 요청하고 퇴원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이 샤워였다. 움직일 힘은 없었으나 밤새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우 화장실에 가서 몸에 물을 뿌리는데 닿는 물살조차 괴로웠다. 무슨 정신으로 씻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씻은 게 정말 다행이었다.

짐을 쌀 힘도 없고 다시 누워 당일에 있던 한방병원 치료를 전부 취소했다. 그리고 전날부터 있던 증상을 메모장에 전부 적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가도 도저히 말로 할 자신이 없었기에 최대한 자세히 적어 내려갔다. 그 사이 의사쌤도 오셔서 다시 진료를 봐주셨고, 걱정을 엄청나게 하셨는데 응급실로 갈 예정이라 하니 다행이라고 꼭 나아지길 바란다고 하셨다. 퇴원하는 날 이게 뭔 상황인지 의료진 모두가 날 안쓰럽고 걱정스럽게 보던 그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감사하기도 하고 얼른 떠나고 싶기도 했지.


남친이 와서 짐을 대신 다 싸주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24년의 마지막 날, 다시 병원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너무 힘들어 거의 말도 하지 못한 채 차에 태워져 옮겨지고 있었다.

7박 8일을 입원했던 병원인데, 응급실을 가본 적이 없으니, 응급실을 찾는 것부터 일이었다. 걷기도 힘들었지만 데스크에 물어가며 1층 한구석에 위치한 응급실로 들어갔다. 접수하고 환자 분류하는 곳에서 설명을 길게 하는 대신에 메모장을 보여드렸다. 써놓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체온과 혈압을 재고 대기실로 안내받아 기다리니 응급실 의사쌤의 진료가 있었고, 각종 검사 오더가 떨어졌다.


병원에 돌아온 것이 가장 실감 난 건 환자복으로의 환복이었다. 다시 만난 민트색 환자복. 이번엔 원피스가 아닌 상의와 바지였다. 원래는 고무줄 바지조차 수술 부위 주변에 닿으면 아파서 입을 수 없었는데, 큰 사이즈로 내려 입으니 입을 만해서 다행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니 응급실 안쪽의 한 베드로 안내를 받아 누웠다. 나중에 검사를 받으러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니 밖에 앉아서 수액을 맞는 사람도 있던데, 내 상태가 꽤 심각하긴 했나 보다. 아무래도 수술 후에 응급실로 들어왔으니 그랬던 걸까.


손에는 다시 바늘이 꽂혔다. 수액과 진통제가 들어가기 시작하고 그때 정신이 좀 들었다. 괜히 아픈 것이 다 나은 것 같아 집에 가고 싶었다. '나 괜찮아 보이지 않아?' '응 아니야.'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사실 이미 제정신이 아니어서 나았다고 뇌에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감기 증상은 없었으나 열이 계속 나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독감과 코로나 검사가 빠질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미 밖에선 독감이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었다. 병원에만 있으니 알 수가 있나. 검사는 정말 오랜만에 코를 통해 뇌를 후벼파는 느낌이었다. 이왕이면 각각 다른 콧구멍에 넣어주지, 한 콧구멍을 두 번 찔리니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왔다.


소변검사, 피검사에 엑스레이를 찍고, CT도 찍고 검사는 많이 했으나 결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응급실에서 본인만 있는 듯이 계속 통화하고 시끄럽게 하며 의료진까지 괴롭히는 분이 있었는데, 내가 아픈 것보다 그 사람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었다. 이미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한가득인데 응급실이 본인 집인 건지,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내용까지 듣는 것은 정신적인 고문이었다.


기다리다 보니 초음파를 보러 오라는 산부인과 호출이 왔다. 이송 기사 분이 데리러 오셔서 입원해서 아팠을 때처럼 환자복을 입고 또 휠체어에 실린 채 4일 만에 다시 산부인과 외래진료실 앞에 도착했다. 교수님이 휠체어에 탄 날 보시더니 바로 앞에 앉아서 괜찮냐고, 다시 입원해야겠는데? 좀 이따 초음파 봅시다 하고 가셔서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내 상태가 그 정도로 안 좋아 보였나. 또 입원이라고? 에이 설마, 약 좀 맞다가 가면 되겠지.

초음파는 이상이 없었고, CT 결과는 아직이었으나 통증은 계속 있고 열이 나니 입원하자고 하셨다.

'입원해도 괜찮겠어요? 내년에 집에 가야 할 텐데.' '어쩌겠어요…'

24년의 마지막 날 오후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응급실로 돌아와 입원 처방을 기다렸다. 날 짜증 나게 하던 옆 환자분을 포함하여 주변의 환자들은 입원실로, 또 집으로 모두가 떠나가고 나만 응급실에 외로이 누워있었다. 역시 우리 교수님, 외래 진료가 지연되는지 입원 처방도 느지막이 나와 6시 반이 되어서야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똑같이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병동을 신청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병동이 배정되었다. 간호사 쌤들도 익숙하니 원래 있던 병동으로 가게 될 것이라 은근히 기대했는데, 한층 위에 배정되었고 2인실이 없어 3인실에 들어갔다. 입원이 며칠이 될지 모르는 채 병실에 들어서서 입원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듣는데 이게 정말 뭔 일인가 싶었다. 요양하러 들어간 곳에서 퇴원 후 응급실, 그리고 재입원이라니. 지금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거지? 병원에 있기 싫어서 한방병원에서 12/31에 퇴원한 건데 결과는 본병원 재입원. 사실엔 변함이 없었고, 기분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12/15에 챙겨 들어갔던 입원 짐을 그대로 들고 12/31에 병원에 다시 풀었다. 내가 뭘 무리했나, 뭘 잘못 먹었나, 잘못한 게 있나 계속 나를 자책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보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24년의 Last day가 그렇게 지나갔다.



- 다음에 계속


* 정말 거의 다 왔네요. 앞으로 다음의 글이 더 올라올 예정입니다.

몇 편 안될 줄 알고 그냥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네요.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제 병원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X. 혼돈의 19박 20일의 끝

# XI.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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