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고어처럼 낯설어졌다.
낭만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고어처럼 낯설어졌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같은 건 사치스럽고 남사스러운 것이 돼 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낭만은 로맨스가 아니라 낭비와 태만의 줄임말일지도 모른다.
절약과 열심, 근면·성실 사이에는 낭만이 끼어들 틈이 없다.
시간이 든 돈이든 무엇인가 낭비할 때, 쉴 틈 없이 바쁘기보단 무념무상으로 늘어져 있을 때 야 비로소 낭만은 쓱 발을 끼워넣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이 되고, 합리적인 것이 최고가 되어버린 ‘가성비 시대’에 연애를 논하는 건 얼토당토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 생각해보면 연애만큼 낭만에 매여 비합리적 행동을 일삼는 짓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요즘 시대에 낭만에는 언제나 수고로움을 동반한다. 그만큼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으로 사는 것이 현실에 순응하는 것 보다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라.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오글거린다는 말을 쉽게 쓰고, 낭만을 ‘오글거린다’는 말로 부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에 반기를 들기 위해 절대로 ‘오글거린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누군가라도 부지런히 쓰지 않아야 언젠가 옛말처럼 쓱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나는 나와 같이 이 척박한 시대에 낭만을 아는 사람이 좋다.
아침 출근하는 버스에서 팝송을 흥얼거리는 버스 기사 아저씨가 좋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의 꽃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친구의 어머니가 좋다. 우연을 운명으로 과장하고,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는 사람들이 좋다. 어느새 닮아버린 거 로의 취향과 관심사도, 상대를 위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에 기꺼이 내보는 용기도, 함께 있으면 꽉 막힌 도로도, 바글거리는 시장도, 힘든 비탈길도 마다하지 않는 그 수고로움도 다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발그레해지는 홍조 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이,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깨무는 입술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참 좋다.
낭만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분명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