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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보라 Sep 08. 2020

내 마음의 물길에 처음 홍수가 났던 날

우리 마음에는 감정이 흘러가는 물길이 있다.

 우리 마음에는 감정이 흘러가는 물길이 있다. 그 물길로 감정이 많이 흐르면 흐를수록 길이 넓어져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게 되고 그럴수록 유속은 줄어들어 조급함도 사그라진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감정과 경험으로 물길을 넓히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요구하지 않는 삶'이란 밖에서 보기에는 평온하고 여유로워보이지만 실은 백조처럼 물 아래서는 열심히 물길질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삶의 방식이다.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스스로 채워나가야 했고, 이해의 진폭을 끊임없이 넓혀야만 주어진 삶을 납득할 수 있었으며, 남에게 베풀려면 나 스스로에게는 더욱 인색하게 굴어야만 했다.  


  지금 와서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사랑에 부족함을 느껴왔고 상대방은 내 사랑을 버거워했는데, 이건 아마 누군가의 사랑이 채우기에는 내 물길이 너무 넓어서, 누군가 받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흐르고 넘쳤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처음으로 넘치도록 사랑을 준 그는 아주 좁은 물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 나처럼 꼭 무언가를 이해해야만 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물길을 넓혀 휘몰아치는 감정을 감당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아니 느낄 필요가 없는 아주 넉넉한 삶을 살아왔다. 나를 만나기 전에 그의 삶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1장에 나오는 것처럼 오직 그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언제나 모든 것이 충분하고, 요구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가 정의하는 삶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그의 좁은 물길을 따라 흐르는 마음은 유속이 빨랐다. 고민과 망설임 따위 없이 위에서 아래로 중력에 몸을 맡긴 채 내게 막힘없이 흘러들어왔다. 가끔은 내가 미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나를 향해 흘러 들어와 흙탕물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겐 항상 사랑이 모자랐던 탓에 끝없이 흘러들어오는 그 사랑이 그저 고맙고 그랬다.  


그렇게 항상 모자란 삶을 스스로 넓히며 살아온 나와, 

항상 넘치는 삶을 주어진대로 살아 온 그가 만난 것이다.


 우리는 분명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왔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방식이 채 굳어지기 전에 서로를 만났다. 나는 그를 만나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를 써보았고, 그는 나를 만나 처음으로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게 나는 그를 만나서 조금씩 어려졌고, 그는 나를 만나서 조금씩 나이가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의 나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스무 살이 갓 넘은 나이에도 그는 가끔 결혼을 요구하기도 했다. 흔히들 사용하듯 ‘사랑해’의 최상급 표현 정도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기보다는 나에게 떼를 쓰는 방법의 하나였다. 아주 가끔은 어리석게도 그와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나를 향한 그 지대한 사랑에 소유가 동반되어야 한다면 당장에라도 그의 소유가 되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짧은 생각에서다. 그가 내게 ‘너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났던 2년동안만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올 테니 기다려주라. 그리고 결혼은 너랑 할래.’라고 철없는 말을 뱉었을 때, 나는 그러라 했다. 그의 앞에 너무 일찍 나타나 버린 내 탓도 있지 않을까? 하곤 그의 끝없는 질투에 내 탓을 찾는 것으로 나는 그를 이해해보려 부단히 노력했다. 조금 버거웠지만, 조금 천천히 흘러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마저도 바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어리지 못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동안 밤을 새워 이야기하는 날이 많았다. 아무리 묻고 물어도 서로에게 궁금한 것 투성이였고, 그는 밤새 이야기를 하다 동트는 창문 밖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서로의 삶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기도 했지만 실은 우리의 관계가 언젠가는 끝날 것을 예견해주기도 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매사에 막무가내인 그가 가끔 버거웠고, 그는 무엇이든 이해하려는 나 때문에 종종 죄책감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으니까. 


 내 마음의 물길에 처음 홍수가 났던 날. 한 번도 넘치도록 사랑받았던 적이 없던 내 삶에 처음 쏟아져 내린 빗줄기에 그만 견디지 못하고 둑이 무너져 내렸던 그 날, 하늘에서도 장대비가 내렸다.  마지막까지 그는 여전히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졸랐고, 나는 그런 그에게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끊임없이 이해시켜야 했다. 그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어린아이처럼 울었고 '그래도 나보다 어른인 네가 맞겠지.’ 하며 나를 이해해보려 나름 애를 썼다.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별앞에서 담담하지 못한 건 어른스러운 행동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사랑해서 사랑을 지나쳐버리면 헤어질 수도, 아니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만났더라면 조금 더 성숙한 연애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다른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배려하면서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는 그런 연애 말이다. 


하지만 끝난 연애에 이런 가정 따위는 가장 하찮은 일이다. 만약 그때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인생에 행인1밖에 되지 못했을 테니.  


 앞으로도 나는 내게 처음으로 받아도 받아도 줄지 않는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에게 두고두고 고마워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난 둑길을 조금 더 단단히 다져두어야지.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와도 너끈히 견딜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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