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보라 Sep 08. 2020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인들은 꼭 같은 이유로 헤어진대

깨어진 유리 조각을 붙이면 언젠가 다시 깨지기 마련이라고?

사람들이 대부분 말하기를 한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인들은 꼭 같은 이유로 헤어진다고 한다. 한 번도 헤어진 옛 애인과 재회하여 만남을 이어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말을 그러려니 하고 믿는 수밖에 없었고, 가끔씩 누군가 '다시 만날까?'라고 내게 물어오면 '아니'하고 남 일이니 쉽게 대답해주면 그만이었다. (무책임한 조언이 아니라 판례에 따른 나름의 판결이었다)


몇 달 전 2년 정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녀도 내게 몇 번쯤 '다시 만날까?'하고 물어오곤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시 만나면 어떨까?'하고 물었고 내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아니야. 똑같을 거야.'하고 스스로 결론을 짓는 식이었다. 내게 다시 만나보라는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을 말려달라는 것인지 몰라 나는 매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연인들은 꼭 같은 이유로 헤어진대.'하고 뭉뚱그려서 대답해주곤 했다. 


그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연애를 끝낸 사람은 그였다. 삶의 무게가 벅차서 그녀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누군가의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딜 만큼 농익은 사람이 아니었고, 사실 농익을 필요도 없는 초여름 같은 계절을 지나는 나이였다. 나는 그런 찬란하게 빛나도 모자란 시간을 보내야 할 그녀가 누군가의 삶의 그림자 속에 파묻혀 햇빛 보지 못하는 게 싫었다. 그런 팍팍한 연애는 그녀보다 차라리 3년쯤 숙성된 나에게나 어울릴 법한 연애였으니까. (그러나 나 역시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피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연애라는 건 언제나 그렇듯 인생 선배의 따뜻한 조언이나 책 속에 적힌 기가 막힌 연애 기술보다 새벽에 도착한 찌질한 그의 문자의 영향력이 더 센 법이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젯밤 그 문자가 온 게 분명했다. 


그녀는 '다시 만나려고 만나는 거 아니야. 그냥 얼굴이나 보려고.'라고 나에게 변명하듯 이야기했다. 자신의 우매한 생각에 방어막을 쳐주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 잘됐네. 잘 만나고 와'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애상담은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까지야 얼마든지 뜯어 말리거나 그를 대신 욕해줄 수 있지만, 그녀가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뒤라면 -그게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든, 문자를 보내는 일이든, 아니면 욕을 한 바가지 쏟아붓는 일이든- 그저 '잘 생각했어'하고 응원해주는 것만이 내 역할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어차피 선택은 그녀의 몫이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질 사람도 그녀이니까. 그녀는 그날 종일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스스로 정말 잘한 생각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 듯 고개를 내젓거나 한숨을 푹 쉬기도 했다. 그녀는 아마 다시 그를 만날 모양이다. 


다음 날 조금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는 아무래도 다시 만나기로 한 것 같다는 애매한 답변을 들고 왔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처럼 '우리 오늘부터 1일이다.'하고 시작하는 연애가 아니다 보니 그녀도 조금 갸우뚱한 눈치였다. 물론 나는 그 재회가 달갑지 않았지만 크게 표현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 그가 말하길 '너랑 사귈 때 네 옆에 내 편 하나쯤 만들어 놓을 걸 그랬어. 헤어지고 나니 다들 잘됐다고만 했다며.' 하고 나를 겨냥하는 듯한 말을 했다기에 더더욱 말을 아꼈다. 이제부터는 그와 그녀의 몫이다. 다시 같은 이유로 헤어지든, 그런 징크스는 깨어지라고 있는 거라며 호기롭게 연애를 이어나가든 말이다.  


5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은 아직도 연애 중이다. 그는 이제 삶의 무게에 눌려 그녀를 방치해두는 대신 삶의 무게에 지칠 때마다 그녀에게 기댈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그녀는 겉으론 툴툴대면서도 언제나 어깨를 내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가끔 그는 예전처럼 그녀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급히 사과하기도 하며, 그녀는 헤어짐을 무기로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이 연애를 지켜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헤어진 후에 다시 연애를 시작하려는 연인들에게 이전과 같은 조언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깨어진 유리 조각을 붙이면 언젠가 다시 깨지기 마련이라고? 

글쎄. 한 번 깨졌던 유리그릇이든, 한 번도 깨지지 않았던 유리그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무엇이 됐든 조심히 하지 않으면 떨어트리는 순간 깨지기 마련이거든. 가장 중요한 건 그 유리그릇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고 있느냐의 차이고, 또 그걸  얼마나 소중히 다루느냐에 달려있을 뿐이지.  

이전 02화 오늘을 낭비하기 가장 좋은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