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피아노 (2)

by Velina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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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897년의 저주

혜진은 소파에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처음부터 말해줘.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준서는 창가로 다가갔다. 햇살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창백한 피부가 더 하얗게 빛났다.

“4개월 전에 이사했어. 번아웃이 온 것 같았거든. 조용한 곳이 필요했어.”

그의 시선이 피아노에 머물렀다.

“이 집 전 주인은 여든 넘은 노인이었는데, 요양원으로 들어간다고 했어. 집을 보러 왔을 때, 저 피아노들이 눈에 들어왔지.”

“그분이 뭐라고 했는데?”

준서는 기억을 더듬었다.

“이 피아노들은 오래 기다렸다고 했어. 연주자를. 1897년에 E.B.라는 장인이 만들었는데, 최고의 음질을 원했대. 낮은 음역과 높은 음역이 서로 간섭한다고 생각해서 둘로 나눈거고.”

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로 다가갔다. 뚜껑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희미한 손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온전한 소리를 위하여. E.B. 1897.’

“그게 다야?”

“집을 사면 피아노를 함께 주겠다고 했어. 조건은 하나. 둘을 떼어놓으면 안 된다고 했어. 반드시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준서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하라고 했어. 어떤 추구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그 노인도 장갑을 끼고 있었어.”

그는 피아노 뚜껑을 손끝으로 쓸었다.

“처음 3개월은 정말 좋았어. 매일 연주했지. 일반 곡은 칠 수 없었어. 음역대가 반쪽이니까. 그래서 이 피아노들을 위한 곡을 쓰기 시작했어. 특별한 경험이었어. 건반을 누르면 온몸으로 진동이 퍼졌어. 벽도, 바닥도, 공기도. 이 집 전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울렸어.”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 달 전부터 음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어. C는 442헤르츠로 2헤르츠 높았고, E는 1헤르츠 낮았어. G#은 1.5헤르츠 높고.”

준서는 귀를 막았다가 뗐다.

“매일 연주하다 보니 그 소리가 몸에 각인됐어.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조율을 시도한 거구나.”

“응. 도구도 있었고,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는 손을 펴 보였다.

“A4부터 시작했어. 망치를 걸고 돌리는 순간... 손끝이 뜨거워졌어. 타는 것 같았어. 참을 수 있을 정도였지. 계속했어. 한 시간쯤. 다섯 개 음을 조율했어.”

그는 검지 끝을 바라보았다. 상아색이었다.

“손톱을 봤어. 이렇게 변해 있었어. 겁이 나서 멈췄어.”

“그러니까 변신도 멈춘 거야?”

“응.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어. 그런데…”

그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안에서 낮고 깊은 울림이 퍼져나왔다.

“그 다섯 개 음이 계속 울려. 몸속에서. 나머지 83개 음이 맞지 않으니까. 불협화음이 되어서 귀를 막아도 들려.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뼈 속에서 울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3주 동안 한숨도 못 잤어. 미쳐가고 있어. 완성하면... 이 소리가 멈출 것 같아.”

혜진은 피아노 현을 들여다보았다. 금속 줄들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아주 가는 빨간 줄. 녹슨 것 같기도, 아니면 다른 물질 같기도 했다. 손을 뻗다 멈췄다.

“다른 조율사는 안 불렀어?”

“불렀어. 세 명. 전부 첫 현을 돌리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도망쳤어. 손이 타는 것처럼 아팠대.”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했어?”

준서는 혜진을 바라보았다.

“혼자서는 못 해. 두 피아노를 동시에 조율해야 해. 한쪽을 조율하면 다른 쪽이 틀어지니까. 그리고…”

그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너라면 이해할 것 같았어. 완성하고 싶은 마음을.”


혜진은 말없이 가방을 들어 문 쪽으로 걸어갔다.

“혜진아.”

그녀는 멈췄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미안해. 위험한 줄 알면서 불렀어. 근데 다른 사람은... 이해 못 해. 너만 알아. 이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혜진은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돌리지는 않았다.

15년 전, 연습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하던 준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12년 전 콩쿠르 무대. 그의 완벽한 연주. 그리고 자신의 실수투성이 연주. 그 후 6년. 그녀가 무너지는 동안, 그는 계속 무대에 섰다.

지금은 준서가 무너지고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완성하면 어떻게 돼?”

“모르겠어. 하지만…”

준서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우리 둘 다 변하겠지.”

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자.”

“한 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

“알아.”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하고 싶어?”

“응.”

혜진은 손잡이에서 손을 떼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녀는 준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완성되면, 함께 연주할 거지? 쇼팽 발라드 1번. 12년 전 그 곡. 이번엔 제대로 치고 싶어.”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혜진은 가방을 열었다. 조율 도구를 꺼냈다.


“시작하자.”




다음 이야기 ⌜변신과 순환⌟는 11월 5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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