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변신
혜진은 1층 피아노 앞에 앉았다. 준서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서로 다른 층, 서로 다른 건반. 그러나 하나의 악기.
“A4부터 할게.”
혜진의 목소리가 위층까지 울렸다.
“알았어.”
“하나, 둘, 셋.”
동시에 망치를 돌렸다.
음이 올라갔다. 혜진이 건반을 눌렀다. 위층에서도 같은 음이 울렸다. 거의 맞았다. 미세하게 조정했다. 다시. 정확했다.
손끝이 따뜻해졌다. 곧 뜨거워졌다. 검지 끝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손톱이 두꺼워졌다. 색이 변했다. 붉은 살빛이 옅어지더니, 상아색으로 굳어갔다.
다음 음. A3. 망치를 걸고 돌렸다. 위층에서 준서가 확인했다. 건반을 누르는 소리. 중지 끝이 딱딱해졌다. 손톱이 넓어졌다. 건반의 폭만큼.
B3. 조율. 확인. 약지 끝.
C4. 조율. 확인. 새끼손가락.
D4. 조율. 확인. 엄지.
리듬이 생겼다. 혜진이 조율하면 준서가 응답했다. 질문과 대답. 작업과 완성. 두 사람의 호흡은 악보처럼 정교했다.
한 시간이 흘렀다. 혜진의 열 손가락 끝이 모두 상아로 변했다. 단단하고 희었다. 관절은 아직 움직였다. 망치를 쥘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 조율했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해가 졌다. 방 안은 어두워졌다. 혜진은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건반은 보였다. 희미하게 빛났다. 상아색의 잔광. 그녀의 손끝도 은은히 빛났다. 변화는 손끝에서 멈춰 있었다.
여섯 시간. 일곱 시간. 준서가 내려왔다. 그의 변화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3주 전처럼. 멈춰 있었다. 그는 혜진을 바라보았다. 혜진도 그를 바라보았다. 곧 끝난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준서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음들. G7. G#7. A7. A#7. 혜진이 1층에서 확인했다. 맞았다. 맞았다. 또 맞았다.
마지막 음. B7. 가장 높은 음. 준서가 망치를 걸었다. 현이 돌아가는 소리.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는 마찰. 음이 올라갔다. 거의. 조금만 더.
맞았다.
혜진은 코드를 쳤다. C-E-G-B. 7th 코드. 확인 신호. 위층에서 같은 코드가 울렸다. 두 피아노가 하나의 화음을 만들었다. 88개 건반. 모두 조율됐다.
“이제 연주해보자.”
혜진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갔다.
“응.”
혜진은 1층 피아노 앞에 앉았다. 준서는 2층 피아노 앞에 앉았다.
혜진이 시작했다. 쇼팽 발라드 1번. 서주. 느리게, 조심스럽게. 낮은 음으로. G단조. 준서는 들었다. 박자를 세었다. 호흡을 맞췄다. 높은 음으로 들어갔다. 멜로디. 물음표처럼 올라가는 선율.
연주가 시작되자, 변화도 함께 시작됐다.
손끝만이 아니라 손 전체가 건반으로 변해갔다. 빠르게. 생각보다 훨씬. 첫 마디, 둘째 마디, 셋째 마디. 희고 검은 패턴. 검지와 중지 사이에 검은 줄무늬. 손목으로 번졌다. 나무의 질감. 검은 칠. 팔뚝으로 올라갔다.
두 피아노가 하나의 곡을 만들었다. 준서가 높은 음을 치면 혜진이 낮은 음으로 받았다. 그가 멜로디를 연주하면 그녀가 화음을 엮었다. 대화였다. 합주였다. 하나의 생명체처럼.
첫 주제가 지나갔다. 두 번째 주제. 더 빠르게, 더 격렬하게. 준서가 템포를 올렸다. 혜진이 따라갔다. 16분음표. 32분음표. 숨이 가빠졌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변화는 가속화됐다. 어깨까지. 등으로 번졌다. 척추가 프레임이 되었다. 피아노의 중심 구조. 갈비뼈가 현이 되었다. 얇고 단단한 금속. 숨 쉴 때마다 떨렸다. 음을 냈다. 낮은 진동. 심장이 해머가 되었다. 두드렸다.
위층에서 준서도 같은 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리듬으로, 음악과 함께 변해갔다.
중간 부분. 12년 전 그녀가 실수했던 곳. 손목이 삐걱거렸던 구절. 음을 놓쳤던 순간. 이번엔 손목이 나무였다. 프레임이었다. 손가락이 건반이었다. 실수할 수 없었다. 음을 놓칠 수 없었다. 그녀 자신이 악기였다.
클라이맥스를 향해. 준서가 옥타브를 올라갔다. 혜진이 따라갔다. 더 높이, 더 빠르게. 화음이 겹쳤다. 불협화음이 쌓였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목까지. 얼굴까지. 턱이 나무가 되었다. 뺨이 검게 칠해졌다. 입술이 현이 되었다. 눈만 남았다. 사람의 눈.
마지막 코드. C-E-G. 3화음. G장조. 어둠에서 빛으로. 두 피아노가 동시에 쳤다. 소리가 건물 전체를 채웠다. 울렸다. 공명했다. 벽이 떨렸다. 공기가 진동했다. 점점 작아졌다. 여운만 남았다.
변신이 완성되기 직전, 마지막 의식이 흐려지며 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렸다기보다 그녀 안에서 울렸다. 같은 악기가 되었으니까.
“고마워.”
“나도.”
“후회하지 않아?”
“아니, 전혀.”
그들의 대화는 진동이었다. 현이 떨리고 공기가 울렸다. 말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함께여서 좋았어.”
“나도.”
완전한 변화가 일어났다.
몸이 49건반 피아노 속으로 녹아들었다. 손이, 팔이, 몸이, 다리가. 경계가 사라졌다. 어디서부터 그녀이고 어디서부터 피아노인지 알 수 없었다. 융합되었다.
평온했다. 마치 오랜 여행 끝에 집에 도착한 것 같았다.
혜진이 사라졌다. 49건반 스타인웨이만 남았다. 조용히 서 있었다.
위층에서 준서도 사라졌다. 39건반 스타인웨이만 남았다.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두 대의 피아노. 연주자를 기다리며.
4. 순환
석 달 후.
젊은 남자가 저택을 찾았다. 피아노 교사였다. 온라인에서 광고를 봤다.
‘쌍둥이 스타인웨이. 무료 양도.’
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섰다. 거실에 피아노. 검은 칠이 빛났다. 49개 건반. 아름다웠다. 뚜껑을 열었다. 현은 놀라울 만큼 깨끗했다. 건반을 눌렀다.
소리가 깊었다. 풍부했다. 단 한 음이었는데, 공간 전체가 그 소리에 숨을 죽였다. 천장이 떨렸고, 가슴 안쪽이 조용히 진동했다.
2층으로 올라갔다. 방 안에 또 다른 피아노. 39개 건반. 높은 음역대. 건반을 눌렀다. C5. 아래층에서 같은 음이 울렸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기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을 쳤다. 코드를 쳤다. 위층 피아노가 함께 울렸다. 화음이 겹쳤다.
귀를 기울였다.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C는 살짝 높고, E는 약간 낮았다.
건반을 만졌다. 따뜻했다. 체온 같았다. 떨림이 느껴졌다.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조율이 필요했다.
거실 한쪽에 가방이 놓여 있었다. 낡은 가죽 가방. 열어봤다. 조율 도구들. 망치, 쐐기, 펠트, 튜너.
손이 망치 쪽으로 움직였다.
A4 현. 440헤르츠. 기준음. 조금만 돌리면 완벽해질 것이다.
망치를 현에 걸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현이 떨렸다. 아직 돌리지도 않았는데. 미세하게. 진동했다.
손끝이 따뜻해졌다. 아니, 뜨거워졌다. 망치를 놓았다. 손을 봤다. 아무 이상 없었다. 다시 잡았다. 또 뜨거워졌다.
손이 떨렸다.
위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건반 소리. 아무도 없는데.
한 음. C5. 그리고 멈췄다.
뭔가 잘못됐다.
이 피아노는. 이 저택은.
망치를 내려놓았다. 가방을 닫았다. 밖으로 나갔다. 차로 향했다. 시동을 걸었다.
언덕을 내려가며 백미러로 저택을 바라봤다. 창문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들렸다. 아주 희미하게.
쇼팽 발라드 1번.
두 대의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자 없이.
차를 멈추지 않았다.
아직은.
백미러 속 저택의 불빛이 점점 작아졌다.
손이 핸들 위에서 떨렸다.
아름다운 소리였다.
저렇게 훌륭한 피아노라면.
저렇게 매혹적인 연주라면.
시동은 계속 걸려 있었다.
언덕 아래 삼거리에서 멈췄다.
왼쪽은 도시로 가는 길이었다.
오른쪽은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다.
엔진 소리만 울렸다.
바람이 불었다.
11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