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갈등 (2)
3.
분노는 파괴를 시작했다.
첫 번째 기둥이 쓰러졌다.
천장이 덜컹이 더니 먼지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멈춰!"
슬픔이 먼저 움직였다. 물을 쏟아내며 불꽃을 끄려 했다.
분노의 불은 물을 삼켜 증기로 바꿨다. 그리고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분노가 비웃었다.
"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700년간의 분노야. 네 슬픔보다 훨씬 뜨거워."
두 번째 기둥.
세 번째.
나는 장미 덩굴을 뻗어 분노의 다리를 묶으려 했다. 덩굴이 빠르게 자라 쇠사슬을 휘감았다.
분노가 팔을 휘둘렀다. 불꽃이 포효하듯 터져 나왔다.
덩굴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내 일부가 타들어가는 고통.
"비켜!"
네 번째 기둥.
다섯 번째.
기쁨이 앞을 가로막았다.
"분노, 제발—"
"저리 가란 말이야!"
분노의 쇠사슬이 기쁨을 향해 날아갔다.
기쁨은 피하지 못했다.
쇠사슬이 기쁨의 몸을 관통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산산이 부서졌다. 무지갯빛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쁨이 쓰러졌다.
"기쁨!"
내가 달려갔다.
그의 몸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희미해지고 있었다.
"괜찮아…"
그는 웃으려 했다. 그러나 입술이 경련했다.
"그냥… 조금 아파…"
분노가 멈췄다.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기쁨의 빛 조각이 쇠사슬에 묻어 있었다.
"나는…"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소리쳤다.
"네가 한 짓을 봐!"
분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의 불꽃이 휘청였다. 두려움. 그의 눈에 두려움이 비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불꽃이 다시 솟구쳤다. 더 격렬하게. 마치 공포를 태워 없애려는 듯.
"상관없어."
그가 중얼거렸다.
여섯 번째 기둥.
일곱 번째.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라졌다.
슬픔이 기쁨 곁에 다가와 물을 흘렸다. 물이 기쁨의 상처를 감쌌다. 서서히, 빛이 다시 모여들었다.
"회복될 때까지 잠시 쉬어."
슬픔이 속삭였다.
여덟 번째 기둥.
아홉 번째.
대회랑의 절반이 무너졌다. 먼지와 잔해 속에서 우리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루브르가 비명을 질렀다.
벽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건물이 고통받고 있었다.
그때 그리움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자장가 같았지만 묘하게 슬펐다. 잃어버린 것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분노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뭐 하는 거야?"
그러나 곧 그의 불꽃이 다시 치솟았다.
"그런 걸로 나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해?"
충격파가 그리움을 덮쳤다. 그리움이 넘어졌다. 바이올린 현 몇 가닥이 끊어졌다.
열 번째 기둥.
분노가 열한 번째 기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분노의 가슴에서 균열이 번졌다.
4.
시작은 가느다란 금이었다.
철골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분노가 멈칫했다.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금이 번지고 있었다. 어깨로, 팔로, 다리로.
"뭐야, 이게…"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열 개의 기둥을 부수는 동안, 그는 자신의 힘을 너무 많이 써버린 것이다. 키메라의 몸을 이루는 꿈의 에너지를. 파괴할수록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갈라진 틈새로 무언가 쏟아졌다.
수천 개의 빛 조각이었다. 투명한, 수정 같은 파편들. 각각은 서로 다른 얼굴과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분노의 몸 안에 응축되어 있던 것들.
그를 구성하는 꿈들. 분노의 근원.
한 소녀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왜... 왜 내 꿈을 빼앗아가요?
한 소년이 피멍 든 얼굴로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야.
한 여자가 구겨진 서류를 손에 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수백, 수천 개의 조각이 분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들은 모두 분노였다. 분노를 만든 원천이었다.
분노가 멈췄다.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꺼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파괴적이지 않았다.
"이건…"
그가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안의 소녀가 울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나야."
분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들이… 나였어."
"맞습니다."
에우노에가 말했다.
"당신을 구성하는 꿈들입니다. 분노의 시작점. 꿈을 빼앗긴 모든 이들의 절규."
분노는 한참 동안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쇠사슬이 바닥에 늘어졌다.
"나는 이들을 위해 분노했어. 이들의 고통이 나를 만들었어."
그가 자신의 갈라진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틈 사이로 빛 조각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하고 있었어. 분노한다고 생각했어. 그들을 위해. 그런데 사실은… 나를 부수고 있었던 거야."
분노가 울기 시작했다.
쇳물 같은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금속의 비명을 터뜨렸다.
"나는… 나는 그냥… 자유롭고 싶었어…"
우리는 다가갔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타들어갈 듯 뜨거웠지만 참았다. 장미 가시가 금속에 닿아 불티를 일으켰지만 놓지 않았다.
"알아."
내가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슬픔도 다가와 분노의 옆에 앉았다. 물방울이 분노의 손에 떨어졌다. 치익 소리가 났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공포가 속삭였다.
"너의 분노를, 너의 절망을, 우리는 이해해."
그리움이 다시 노래했다. 끊어진 현으로. 불완전한 멜로디.
그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낯선 감정. 사랑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분노의 손을 잡은 순간, 그의 감정 일부가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생애 첫 진정한 분노를 느꼈다. 인간들에 대한. 시스템에 대한. 700년간의 억압에 대한.
"이게… 뭐지?"
말이 목구멍에서 걸려 나왔다.
분노가 나를 바라보았다.
"느껴져?"
"응. 네 분노가."
"나도 느껴져."
그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네 사랑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기쁨이 몸을 일으켰다. 상흔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응. 덕분에."
기쁨이 분노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안해. 내가… 너를…"
"알아, 네 마음. 나도 느꼈어. 네가 얼마나 아팠는지."
기쁨의 빛 조각 하나가 분노의 손에 떨어졌다. 타지 않았다. 대신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일부야. 그러니까… 용서해."
우리는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다. 무너진 대회랑 한가운데.
마침내 분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모든 걸 망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괴된 기둥들, 갈라진 벽들, 무너진 천장.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에우노에의 목소리가 울렸다.
"루브르는 스스로 치유할 겁니다. 하지만…"
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일부는 영구히 손상되었습니다. 저쪽 프레스코화, 저 조각상들은 복원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잔해를 바라보았다. 갈라진 그림. 부서진 대리석. 돌이킬 수 없는 상실.
"그것도 우리의 일부가 되겠지."
슬픔이 말했다.
"상처처럼."
벽들이 차츰 움직이기 시작했다. 틈이 메워지고 흩어진 파편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갔다.
"저희는 서둘러야 합니다."
에우노에가 말했다.
"궁극의 키메라가 곧 깨어날 겁니다. 그곳으로 함께 가시죠."
"함께?"
"네. 그는 여러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슨 결정?"
"이 세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다음 이야기 ⌜제3부: 궁극(1)⌟는 12월 24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