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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lopenspirits Mar 26. 2024

세입자의 서러움

휴직 84일 차

     욕실 수리 아저씨가 왔다. 샤워부스 문이 끝까지 안 닫히고 끝까지 안 열려서 매우 불편했다. 타일이 들떠서 생기는 현상이라 경첩을 아예 다시 달아야 했다. 이건 입주 초에도 있었던 문제인데, 집주인과 부동산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말하기 입 아파서 그냥 쓰고 있었는데 계약종료 3개월을 남기고서야 문을 수리했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동안 이렇게 어떻게 살았냐고. 불편한 건 둘째치고 이러다가 타일이 터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유리가 깨지기도 해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고 한다. 다치면 안 된다고 꼼꼼히 고쳐주셨다. 세입자는 그런 거다. 집주인이 고쳐주기 전까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동생친구 부부의 이야기다. 신혼집을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서 전세로 시작했는데, 그 집을 3천만 원을 들여서 리모델링을 했다고 했다. 나와 동생은 미쳤다고 했다. 내 집도 아닌데, 이사 가면 인테리어 싸들고 갈 것도 아닌데 3천만 원 생돈을 썼다고. 하지만 올케와 친구의 의견은 달랐다. 올케는 화이트 화이트 한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싶은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했고, 친구는 그래도 못해도 2년은 살 집인데 최소한의 취향은 갖추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오늘 욕실 수리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변기와 세면대를 교체하면 얼마나 드냐고. 이사 갈 집은 입주 때 그대로, 태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거쳐간 변기는 무조건 바꾸고 싶었다. 요새 허리가 너무 아파 구부리기가 힘들어서 세면대를 좀 더 높이고 싶다. 세탁기와 에어컨, 냉장고도 20년 전 입주 때 빌트인 되었던 그대로였다. 솔직히 20년 정도 썼으면 좀 바꿀 때도 되었는데 새로운 집주인이 해줄지 모르겠다. 20년 동안 고장 한번 안 나는 것도 신기하다. 엘지의 기술력은 대단하다. 3천만 원짜리 인테리어를 한 동생친구와이프를 욕했지만, 나는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가격을 알아봤다. 몇 개는 제 돈 주고 할 테니, 몇 개는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나름 네고를 해볼 생각이지만 아마 나 역시도 내 집 아닌 곳에 생돈을 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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