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하는 걸까요?
이 질문 앞에 서면 여전히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경험들은, 조금씩 믿음 쪽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젊은 시절, 단순히 ‘신은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철학자 니체를 만나며 그 믿음은 흔들렸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상을 마주했을 때, 제가 붙들고 있던 신의 존재는 단지 위안의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하루를 묵주와 함께 시작합니다.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신석필 작가의 작품 〈기원〉처럼, 사기그릇에 정화수를 떠놓고 마음을 비추며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간절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기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며 살아가다 보니,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논리로는 닿을 수 없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천만 년에 걸쳐 쌓인 퇴적암처럼, 그런 시간들은 신뢰와 믿음을 차곡차곡 쌓아주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매일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모습은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시던 옛 어머니들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인간은 결국 ‘기도하는 존재’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기도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가장 깊이 체험한 날이 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겨울 새벽, 12월 24일. 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된 밤, 위급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응급차만이 유일하게 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저는 거의 울부짖듯 기도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 간신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의료진은 분주했고, 머리가 희끗한 의사는 아이를 잠시 살핀 뒤 말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이어졌고, 고통과 기적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해 영재원에 합격했을 때, 그날의 기도와 고통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고통이 있었기에, 아이는 더 강하고 단단해졌고, 저 역시 그 과정을 지나며 엄마로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삶은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반드시 절망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배웠습니다.
그 시간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을 더 사랑하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루하루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기도가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고, 수많은 고비마다 신이 곁에 있었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매일이, 그 모든 순간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고통이 지난 후에야, 그 아픔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고통을 겪으셨나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통해 배운 삶의 의미, 그리고 그 안에서 느낀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신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마음은 우리를 더 깊고 넓게 성장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을 품고, 더 따뜻하고 깊이 있는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