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이던 요한이가 어느 날 말했습니다.
“어머니, 고통 없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위로를 찾아 헤맸지만,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진실을 아이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 말은 가슴 깊은 곳에 스며들어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았고, 그때까지 붙잡고 있던 삶의 의미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무렵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만을 쫓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눈앞의 현실은 받아들이지 못한 채, ‘더 나은 어딘가’를 향해 의미 없이 달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요한이의 말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고통은 정말 쓸모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 안에 무언가 숨겨진 의미가 있는 걸까?'
그 질문은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실, 요한이가 그 말을 해주던 시기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깊고 축축한 우물 안에 갇힌 듯, 사방은 막혀 있었고, 위로는 빛 한 줄기 스며들지 않는 캄캄한 어둠뿐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쳤습니다.
그때 세상 모든 것이 등을 돌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현실의 무게는 무거웠고, 마음은 점점 더 지쳐갔습니다. 그래서 산을 찾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맨발로, 때로는 울면서 걸었습니다. 발바닥을 찌르는 돌의 거칠고 차가운 감촉이 현실로 데려다 놓았고, 그렇게 조금씩 살아 있음을 되찾아갔습니다.
개인전을 열던 날, 멀리서 달려와 준 김하영 작가님이 명리학으로 제 삶을 읽어주셨습니다.
“그동안 작가님, 너무 힘들고 어둡고 차가운 길을 걸어오셨네요. 정말 잘 견디셨어요. 이제는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고 계십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따뜻한 삶이 펼쳐질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삶의 장면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했습니다.
단순히 버티기만 했던 시간, 의미 없이 흘러갔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준비시키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내가 그 길을 걸어왔구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구나. 누군가 제 어깨를 조용히 토닥이며 “잘 견뎠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통틀어 저를 가장 먼저 건져 올려준 것은, 결국 아이의 한마디였습니다.
“어머니, 고통 없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삶을 다시 쓰게 만든 선언이었습니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라고 했지요. 그 ‘살아야 하는 이유’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살아내는 일, 그림으로 마음을 기록하는 일, 그리고 글로 진심을 전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이젤 앞에 서 있을 때마다, 다시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검은색과 어두운 그림자를 그리면서도, 그 속에 희미하게나마 빛나는 색을 담을 수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주었습니다.
개인전에서 한 관람객이 제 그림 앞에 오랜 시간 머무른 후, 조용히 말했습니다.
“작가님 그림을 보니, 제 마음이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그 순간 확신했습니다.
지나온 고통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그 길고 어두운 시간이 있었기에 누군가의 마음에 위로가 닿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음을.
고통은 제 삶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여러분의 삶에도 깊은 우물 같은 시간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빛 한 줄기조차 들어오지 않고, 길이 보이지 않는 시간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순간이 언젠가 해석되는 날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 그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구나.
그 아픔이 헛되지 않았구나.
고통 없는 삶은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을 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삶 속 고통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나요?
이 시간을 지나고 나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 있을까요?
이 고통을 통해, 또 누군가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요?
아이가 조용히 건넨 그 한마디처럼,
“고통 없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 말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작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