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by 오늘도책한잔

개인전을 마친 후, 예상치 못한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치열하게 준비해 온 전시가 끝났지만, 성취감보다는 오히려 마음속에 멍한 고요함이 감돌았습니다. 끝났다는 안도감보다는,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그 질문은 단순히 다음 목표를 향한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그림을 통해 견뎌낸 시간, 치유받은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게 되면서도,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묻고 싶어 졌습니다. 이제는 고통과 치유의 시간 너머에, 새로운 나로 살아가야 할 때라는 감각이 조용히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맨발로 산을 걷고, 아이들을 키우고, 틈틈이 그림을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말없이 자연과 마주하고, 가족과 일상을 꾸려가며 보낸 시간이 어느새 일부가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조용해진 집안을 정리한 뒤 문득 마음속에서 하나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처음엔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감정 하나, 순간의 생각 하나를 블로그에 남기듯 써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글쓰기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떤 삶을 원하는 사람일까. 그림을 그릴 때처럼, 글을 쓰는 시간에도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다시 바라보고, 내 안의 진실을 하나하나 꺼내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던 것들이, 글이 되면서 스스로 이해하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림이 감정의 색이라면, 글은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삶을 조용히 정리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묻고, 그 물음에 자신만의 언어로 답할 줄 아는 존재.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그런 사유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 같았습니다.

개인전을 마친 후 다시 고요한 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 불을 낮추고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글을 썼습니다. 수많은 단어 중에 지금 내 마음에 맞는 하나를 고르고, 단어가 문장이 되도록 조심스레 이어 붙였습니다. 그 시간이 어쩌면 고치 속 애벌레처럼, 인내의 시간을 견디며 또 하나의 나로 태어나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삶을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 길을 선택한 이유는 누구의 기대나 세상의 평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안에서부터 솟아난 자연스러운 길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삶을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이 대답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게 된 후부터, 더 이상 막막한 마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더라도, 진심으로 원하는 길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 걸음이 결국 있어야 할 자리로 데려다줄 거라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삶의 전환점 앞에서 누구나 불안과 공허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취의 순간 뒤에도 여전히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물음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은 단지 다음 과제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깊은 사유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혹은 조용히 자연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든, 그 시간들은 결국 자신을 만나고 삶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귀한 순간이 됩니다. 삶을 기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기록이 솔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써 내려간 진실한 이야기들이, 자신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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