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자주 혼자 있는 간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강가에 나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습니다. 해가 천천히 지고, 붉은빛이 강물 위로 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지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고요하게 멈춘 것 같았습니다. 손가락으로 풀을 뽑으며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하고 생각하던 그 시절,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이미 스스로에게 삶의 방향을 묻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라 성장하면서도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편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늘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마음을 쉽게 내보이지 못했습니다. 상대의 말에 제 생각을 맞춰가며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시간은 늘 긴장되고 피곤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이 따라왔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며 마치 제 안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여러 겹의 포장을 하고 살아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엄마들처럼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여하고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밀어 넣어보기도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자연 속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보내는 시간이 훨씬 편했습니다. 특히 맨발로 산을 걷는 일은 커다란 위로이자 삶의 중심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한때는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할까', '왜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동안 혼자 보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들이 중심을 세우고, 진정으로 바라는 삶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을 통해 마음을 세상에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소박했지만, 결국에는 생애 첫 개인전이라는 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시장 한가운데 서서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살아 있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감정이 아니라, 내 안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의 눈물과 마주하며, 삶이 의미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 동안에는 어떤 포장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할 필요도 없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오래전 노을 앞에 앉아 있던 어린 시절의 저와, 지금의 제가 맞닿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시간이 하나로 이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삶에는 아픔의 순간도 찾아왔습니다. 몸의 고통을 견뎌야 했던 날들도 있었고, 마음속까지 텅 빈 듯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 주어진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습니다. 고통은 “너는 진짜 무엇을 원하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 앞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바라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를요. 함께 있는 존재들이 삶을 지탱해주고 있었고, 그 안에서 다시 한번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외톨이처럼 지냈던 시간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혼자 있던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라기보다는, 깊이 들여다보고 채워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 있었기에 읽고, 쓰고, 걷고, 그리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행위는 저라는 존재가 여전히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우리는 언제 '살아 있구나'를 느끼게 될까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에 진짜 나를 만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외로움이 아닌,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피어난 나만의 목소리.
혹시 지금 나 자신을 포장하거나 감추고 있지는 않나요?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의 속도가 느리더라도, 중심이 단단하다면 우리는 분명히 ‘나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위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