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따스한 숨결을 닮은 봄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날, 남편은 주방 창가 앞 정원에 장미 두 그루를 심으며 말했습니다.
“꽃을 보며 좋은 생각을 해. 그러면 건강해질 거야.”
무심한 듯 건넨 말이, 마음 깊은 곳에 작은 파문을 남겼습니다.
그날 이후로 장미와 눈을 맞추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습니다.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는 아침이면, 장미의 작은 잎과 꽃잎 하나하나가 마치 저를 향해 손짓하는 듯했습니다.
흰빛에 분홍빛 물감을 톡톡 떨어뜨린 듯한 꽃잎 앞에서 자주 걸음을 멈췄습니다.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말없이 웃는 순간들.
그 순간들은 어느새 하루를 따뜻하게 덮어주고 있었습니다.
장미 향은 창문 너머로 집 안을 가득 채웠고, 외출 후 돌아오는 발걸음마저 향기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 말까지도 장미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제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첫눈이 내린 날, 가지 끝에 남은 마지막 한 송이는 마치 웃으며 저를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참 많이 위로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정원에 피어난 이 장미는 단 하나였습니다.
매일 돌보고, 바라보며, 숨을 함께 쉬었던 존재였기에 더욱 애틋하고 깊이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꽃이 진 가지에 작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하나씩 달았습니다.
장미에게 계속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닿았던 걸까요.
다음 해, 장미는 담장 너머까지 꽃대를 뻗어 더욱 풍성한 꽃을 피워주었습니다.
저는 장미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피어나고,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배웠습니다.
마르고 약해진 마음 위에도, 따뜻한 손길 하나, 애틋한 눈길 하나가 스며든다면
사랑은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요.
하루하루,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엄마, 가족에게 필요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지켜주고, 도와주고,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맨발로 산을 올랐습니다.
맨발로 흙을 밟고, 바람을 맞으며 걸을 때면
어린 시절 가루약처럼 고약한 쓴맛이 혀끝에 번지곤 했습니다.
그 쓴맛은 몸의 감각을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 물들였습니다.
하지만 걸음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쓴맛은 조금씩 옅어졌습니다.
그렇게 몇 해를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그 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몸이 먼저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먼저 변했고, 몸은 그 마음을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변화의 이면에는 언제나 가족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없었다면, 저는 그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쓴맛을 참아내며 걸었던 시간들이
결국 어둠에서 꺼내주었습니다.
귀를 울리던 이명도, 입안에 맴돌던 쓴맛도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졌습니다.
다시 꽃을 보고, 향기를 맡고, 손끝으로 촉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의 감각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누워 있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많아졌고, 청소하고 요리하며 가족의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하루를 살피며,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엄마’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저를 움직였고, 다시 살게 했으며, 제 자리를 다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진 자리.
하지만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시간이 필요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햇살이 길게 드리운 오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의 품 안에서, 그리고 마음의 안쪽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또다시 피어날 수 있는 제 자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여러분은 가족 안에서 어떤 자리에 계신가요?
그 자리는 편안하신가요, 혹은 너무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며 지쳐 있지는 않으신가요?
우리가 가족에게 주는 사랑만큼,
자신에게도 따뜻한 시선과 손길을 건네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자리도, 꽃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그러하듯, 지금은 앙상해 보여도
언젠가는 분명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장미 가지처럼
우리의 마음도 흔들리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존재의 힘을 기억하며
오늘도 한 걸음씩,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