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가 일어나 묻습니다. "엄마, 괜찮아?" 전화벨이 울립니다. "괜찮아? 산에 갈 수 있겠어?" 아침부터 떡볶이를 먹자고 합니다. "집에 가도 괜찮겠어?" 막내 아이를 데리고 커피와 마카롱을 사들고 와서 묻습니다. "언니, 좀 어떠세요?" 괜찮아? 한마디가 사람을 살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응답하라 1995에서 성나정(고아라)이 문제를 냈어요. 창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 때문에 힘들고 창문을 열면 시끄럽고 누구에게도 원하던 답을 듣지 못했는데 칠봉이(유연석)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너 괜찮아?" '왜 저 말에 감동하는 걸까?' 공감되지 않았어요.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듣지 않아서였을까요? 뒤로 괜찮냐는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어요.
어제, 오늘 주변 분들에게 괜찮냐는 말을 들었어요. 정작 그 말을 나눠야 할 사람과 나누지 못해 서러움이 복받쳐 울었어요. 고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늦었다는 것을요.
건너 마을에 살던 언니가 있었어요. 2017년 임신하고 유방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태아를 위해 출산하고 수술했어요. 얼마 후 전이가 되어 간암 4기 판정을 받게 되었어요. 8살, 5살 아이를 키우는 언니가 덜 아픈 저를 볼 때마다 말했어요. "지은 씨 컨디션 괜찮아요?" 지난 2월, 얼굴빛이 좋지 않았던 언니에게 물었어요. "언니, 괜찮아요?" "남편이 늦게 퇴근해서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그날 더 많은 시간을 갖지 않고 돌아섰던 것이 왜 그리 후회되던지요. 또 찾아가지 않았던 옹졸함이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정말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차 오릅니다.
괜찮아,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괜찮을 말인지... 소중한 사람을 보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못난 마음과 달리, 산에 벚꽃이 활짝 폈습니다. '지은아, 괜찮아...'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