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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책한잔 May 05. 2021

고사리 하면 생각나는 사람

고사리 꺾는 며느리

혹시 고사리 꺾어 보셨나요? 고사리는 산소 주변 낮은 자리에서 볼 수 있어요. 그것도 자세히 봐야 해요. 흔하지 않아서일까요? 고부랑 할머니 은빛 머리카락을 집은 비녀 같은 고사리를 발견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져요. 짙은 초록 털북숭이 대를 꺾을 때 느껴지는 손맛은 대어 낚는 낚시꾼의 손맛과 같을까요? 고사리를 꺾을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고사리 같은 사람이 좋지 않을까?'

참기름 발라 놓은 사람처럼 번지르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 아닌,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집중해서 봐야 보이는 사람.

남편이 그런 사람이에요. 남에 눈에 뜨지 말고 꼭꼭 숨어있으라고 20년을 성당에서 기도했어요. 말이 기도지 남편 입장에서는 지독한 주술이었다고 농담처럼 말해요.

남편을 만난 지 10년이 지났는데 퇴근해서 들어오면 고사리를 발견한 것처럼 좋아요. 남편이 좋아서일까요? 시어머니도 그런 존재예요.

70이 넘은 홀어머니, 늘 한결같이 좋기만 할까요? 날씨처럼 오락가락해요. 다만, 끝자락에 언제나 호피무늬 솜바지를 입고 새벽 첫차로 달려왔던 손길을 잊지 못해요.

요한이 4살, 막 돌 넘은 안나를 두고 수술대에 올라 암덩어리 제거하고 집에 왔을 때 몸을 부축하며 끓여 주신 감잣국이 늘 생각나요. 그래서 아플 때 곁에 있어 준 사람을 잊지 못하나 봐요.

고사리를 꺾을 때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서운할 때도 있지만 서운하다는 생각조차 미안해지는 사람이요. 바로 시어머니예요.

고사리 한 줌을 꺾고 들어와 전화를 걸었어요.
'안 받으며 고백 안 할래.'
통화 연결음이 오래 이어져  끓으려는 순간,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애, 전화했니? 갓난쟁이들은 뭐하니? 지금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니?"
"네, 어머니. 갓난쟁이들 실컷 뛰어다니며 놀고 있어요. 오늘 고사리 꺾다가 어머니 생각 했어요. 박기량 곁에 어머니가 있어서 참 좋다고요. 제가 해드리는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지만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곁에 있어 주세요."
울먹이는 며느리 고백에 시어머니 그냥 웃고 계셨어요.

어린 시절 끓었던 고사리는 친정어머니 갔다 드리기 위해 산천을 누비며 끊었는데 이제 시어머니 드리기 위해 매일 같은 장소에서 낮은 자세로 똑똑 고사리를 끊고 있어요. 한 주먹도 안 되는 고사리가 저를 철들게 하네요.


말린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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