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이사와 떡을 돌릴 때 허리가 고사리처럼 구부러지신 비구니 스님을 만났어요. 커다란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접시를 받으시며 이름을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다시 귀하게 인사하고 저희 부부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셨어요. 길상사는 목탁 소리 없이 풀만 자랐어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직독 직해 플랭 카트를 보고 전화했어요. 노스님께서 전화를 간신히 받으셨어요.
"여보세요."
"차라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의 듣고 싶은데 아이 둘이 있어서요. 혹시 같이 가서 강의 들어도 될까요?"
"될 겁니다. 한번 와 보세요."
20대 읽지 못하고 방구석에 던져 버린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30대 다시 읽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갔어요. 중절모를 쓰신 선생님께서 귀품 있는 목소리로 강의를 하셨어요. 맨 뒤 구석에 앉아 요한이를 단속하며 수업을 들었어요. 10시에 시작한 강의는 1시가 넘어도 끝나지 않았어요. 그쯤 되니 가을날 메뚜기처럼 두 아이는 팔짝팔짝 날뛰었어요. 이렇게 해서 안 되겠다 싶어 가방 싸며 단념하려 했는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기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요한이라고요.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박수까지 치셨어요. 처음 겪는 일이라 요한이도 어리둥절했는지 가만히 있었어요.
그렇게 몇 해가 지났을까요?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시작해 다양한 고전을 선생님께 배웠어요. 천성이 모나고 비뚤어져 선생님과 몇 차례 싸우면서 배움이 달라졌어요.
선생님께서 건강상 이유로 강의 그만두시고 요한이에게 원서 책을 주셨어요.
'언제 저 책을 읽을까?'
책꽂이에 두었던 책이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신 Magic tree house 원서였어요.
사는 것을 행복만 바라고 살 때,
제 눈앞에 나타난 것이 니체였어요.
스님께서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법당에 있는 위패와 돈을 신도들에게 돌려주셨다고 해요. 그 후론 사람들의 발길이 아닌 풀과 바람만 머물다 가는 고요한 절이 되었고요.
70이 넘었어도 아기 같은 인자한 미소를 품고 합장하는 스님께서 밝은 글을 기록하라고 박기량 필명을 지어 주셨어요.
119로 몇 차례 실려 가시고 이제 병원에서 치료받으시며 공부하시겠다고 절을 떠나셨어요. 산책 갈 때 스님이 열고 닫는 문소리만 들어도 좋았던 시간이 사라지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