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시에서 멈춤
저의 삶은 도시가 아닌, 산골짜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릴 적, 깊은 산속에서 자랐습니다.
농약통을 엎어 놓은 곳에 올라앉아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하늘과 마주하던 아이였습니다.
그 시간은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자, 고요한 위로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할머니 댁에 남겨두고 도시로 떠나셨습니다.
그 장면은 이사라기보다는 짐을 떨쳐내듯 조용하고 단호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의 손에 맡겨져 자랐고, 할머니는 매일 묵주를 들고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비가 가장 무섭다.”
할머니가 가끔 하시던 그 말은 어린 마음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일곱 남매 중 가장 깊은 근심이었던 아버지를 위해, 할머니는 묵주알을 돌리며 나지막하지만 단단하게, 때로는 절박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할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그 순간 생각했습니다.
'이제 누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 줄까?'
할머니처럼 그 많은 묵주알을 돌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묵주 대신 밤하늘의 달에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방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던 달.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달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습니다.
기도가 곧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삶은 언제나 기도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과 분위기 속에서 꿈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면, 꼭 그림을 그리겠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랜 꿈은 드디어 현실이 되었습니다.
민성동 화가 선생님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캔버스와 물감, 붓이 놓인 세계는 매일 새로웠습니다.
그림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중심이 되던 시기, 도서관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만났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문장을 읽고 밤새 책을 덮지 못했습니다.
헤세가 살던 독일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2005년 세계청년대회(WYD) 참가를 계기로 독일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행은 친구들과의 유럽 배낭여행으로 이어졌고, 그 여정의 끝에서 확신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요.
그 믿음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새겨진 문장처럼 삶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30대에 접어들며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꿈꾸던 평범한 삶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입원과 수술, 그리고 ‘암환자’라는 이름.
삶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절망 속에 머물게 두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성당 성전 건축 기금 마련 행사에서 추첨이 있었습니다.
1등 상품은 성지순례 여행권, 300만 원.
집에서 성당까지 멀고, 그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몸도 지쳐 있었고, 두 아이와 외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이 몸으로 정말 갈 수 있겠어?”
“응, 그래도 가야 할 것 같아.”
발표 시간이 앞당겨졌고, 마지막 1등 번호가 불려졌습니다.
비를 뚫고 당첨자 자리에 걸어 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다 보고 계셨구나... 나를 잊지 않으셨구나...'
그 이듬해, 두 아이—당시 4살과 7살—와 함께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돌로미티에서 로마까지 이어진 순례길.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순간은 언제나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학군이나 입지, 편의시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까요.
상수도조차 연결되지 않은 집에서의 시작.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만큼 삶은 더 생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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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누군가의 삶은 도전과 고난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겪는 어려움이 나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됩니다.
삶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 잠시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세요.
밤하늘의 달, 별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꼭 가지세요.
저는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취미, 독서, 산책, 명상 등 자신만의 ‘쉼’을 찾길 바랍니다.
작은 기도와 소망이 때로는 큰 힘이 됩니다.
꼭 종교적 신앙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과 내 삶, 가족을 위한 ‘의식’은 마음을 지탱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완벽한 삶’을 꿈꾸지 마세요.
우리 삶은 때론 깨지고 부서져도, 그 틈 사이로 햇살과 바람이 들어옵니다. 그 틈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큰 힘이 됩니다.
자연이 주는 고요함과 신선한 공기는 어떤 약보다 값진 치료제일 수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작은 불빛이 되길 바랍니다.
어디서 시작하든, 어떤 길을 걷고 있든, 오늘 하루의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