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병든 몸, 멀어진 아이

시골로 이사 온 엄마의 두 번째 이야기

by 오늘도책한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사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가 마음껏 뛰놀며 자유롭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골로 이사 왔습니다.

이삿짐을 풀자마자 굵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쏴아― 도심 아파트가 아닌, 초록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처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바닷가에서 새끼 거북이가 모래를 헤치고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이 낯선 시골집이 놀랍도록 익숙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몇 년은 살아온 공간처럼요.

어쩌면, 그토록 바라던 곳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착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침이 밝고, 아이를 작은 시골 학교로 향하는 스쿨버스에 태워 보냈습니다.

'이제는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이끌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이의 학교생활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육은 제가 맡을 테니, 어머님은 아이에게 사랑만 주세요.”


사랑만 주라니…

그 사랑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무너져 있는 내 안에서,

무엇을 꺼내 아이에게 내어줄 수 있을지 혼란스럽고 두려웠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당신이 좀 도와줘… 나도 잘 모르겠어…”


몸 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든 날들이 많았습니다.

내 안의 여유도 체력도 바닥난 상태였고,

‘엄마’라는 이름이 왜 이리 무겁게 느껴지는지, 매일이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등굣길에 보낸 뒤,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시멘트로 된 농로길을 따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렇게 걷지 않으면 숨 쉴 수 없을 것 같았고,

걸어야만 하루를 견딜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탈진해 쓰러지듯 누웠고,

다음 날 아침, 발끝을 디딜 때마다

온몸의 뼈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발끝에서 시작된 통증은 하루 종일 따라다녔고,

한 달에 한두 번은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무게는 점점 몸과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시골로 이사 왔지만,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도시는 떠났지만, 고단함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이곳엔 자연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는 것,

풀냄새가 있고, 바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삶이 부럽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저는,

여전히 방향을 잃었고,

아이에게조차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고, 또 다른 계절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

조용히 열매를 키워가는 들꽃,

아침마다 기다리는 새소리들.


지금은, 아직 시작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오늘 하루를 버틸 힘과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한 줄기 온기를

이 땅에서 조금씩 다시 찾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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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1. “사랑만 주세요”라는 말의 무게


엄마라는 존재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때로는 그조차 버거울 만큼 지쳐 있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기도 하지만,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여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2. 자연이 회복에 미치는 작고도 깊은 영향


자연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내 안을 조용히 들여다볼 여백을 만들어줍니다.


도심에서 ‘바쁨’에 묻혀 있던 감각들이 서서히 깨어나는 경험은, 자기 회복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3.‘이사’가 아닌 ‘이동’의 의미


공간을 바꿨다고 삶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장소가 달라졌기에 내가 내 삶을 다시 바라볼 기회는 분명 생깁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도망’이 아니라 ‘찾기’의 여정에 더 가깝습니다.


4. 엄마도 엄마를 배워가는 중


이 글은 완벽하지 않은 엄마의 이야기이기에 더 진실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나 역시 엄마라는 역할을 배워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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