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발바닥으로 느낀 땅의 언어

by 오늘도책한잔

6. 발바닥으로 느낀 땅의 언어

매일 산을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죠. 땀이 나면 조금은 개운해질까, 숨이 차면 머릿속 잡념들이 사라질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걷다 보니 어느새 산길 중간쯤,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선 탁 트인 곳에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신발을 벗고 그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누구의 시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날부터 나는 가끔 그곳에서 신발을 벗고 앉았습니다.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나무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 때마다 마음속 소음들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걸을 때도 맨발로 걸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감각이 놀랍도록 섬세했습니다. 차가운 흙, 바스락거리는 낙엽, 포근한 흙길의 촉감이 마치 땅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딱딱하고 답답했던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 오랫동안 마음 한 켠에 쌓여 있던 무거운 감정들이 천천히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걱정과 분노, 슬픔이 쉼 없이 떠들던 내면의 소음 같았는데, 어느 순간 그 감정들이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산길을 걷는 시간이 어느새 내 하루의 의식이자 기도가 되었습니다.

맨발 걷기를 시작했을 때는 어지럼증도 있었고, 발바닥에 생긴 작은 상처도 있었습니다. 밤송이 가시에 찔리기도 하고 붓기도 했으며 근육통이 오래가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런 불편함이 나를 멈추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명현현상’이라 부릅니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몸과 마음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반응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병이라고 생각했을 피로나 통증이 이제는 회복의 신호로 느껴졌습니다.

왜 맨발이어야 할까요? 현대인은 대부분 인공 소재의 신발과 바닥 위에서 생활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지구와 전기적으로 연결될 때 가장 안정적인 생체리듬을 유지합니다. 맨발 걷기는 단순한 자연 체험을 넘어 ‘접지(Grounding)’라 불리는 자연 치유법입니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맨발로 자연의 땅(흙, 모래, 잔디 등)에 닿으면 우리 몸속 과도한 양전하가 흙의 음전하와 중화되면서 염증, 스트레스, 수면장애, 혈액순환 장애 등 여러 증상이 완화됩니다. 접지의 주요 효과는 염증 감소, 면역력 향상,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수면 질 개선, 만성 통증 완화입니다.

특히 만성 피로나 무기력증을 겪는 이들에게 맨발 걷기는 자연이 준 큰 선물입니다. 땅은 우리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균형을 찾아주는 거대한 치유의 공간입니다.

가끔 산길에서 누군가 “발바닥은 안 아프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습니다. 사실 발은 아팠습니다. 가시에 찔리고, 날카로운 돌에 긁히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것은 발로 느낄 수 없었던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억눌린 감정,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 하루하루 쌓이는 불안들.

그 모든 마음의 무게가 맨발로 걸으며 조금씩 풀려나갔습니다. 발바닥으로 흙을 밟는 순간, 나는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왔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맨발 걷기는 나에게 그런 소중한 치유의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처음 맨발로 걷기를 시작할 때는 ‘배운다’는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땅을 밟는다는 것은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의 고리를 하나씩 푸는 일이었고, 발바닥으로 나를 새롭게 감각하며 마음속 막힌 물줄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구나.’

‘나는 내 감각을 믿을 수 있구나.’

이 단순한 문장들이 나를 살렸고, 그 감각이 곧 땅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말이 아닌, 느낌이며 삶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무거운 감정에 발이 묶여 있지는 않나요? 복잡한 생각과 관계, 해야 할 일에 지쳐 몸이 무거운가요? 그렇다면 잠시 신발을 벗고 가까운 흙길이나 잔디밭을 걸어 보세요. 발바닥이 땅을 느끼는 순간,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잊고 있던 감각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나’를 깨울 것입니다.

맨발 걷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이 됩니다.

매일 맨발로 걷는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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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을까요?
분주한 일상 속에서 마음은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럴 때, 발바닥으로 땅을 느끼며 한 걸음씩 내딛는 경험이 마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해 보세요.
내 안에 숨겨진 감정들이 서서히 풀리고, 나 자신과 조금 더 깊이 연결되는 시간, 그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발바닥으로 들려오는 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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