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판정을 받은 날, 세상이 한순간에 멈춘 듯했습니다.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는 발걸음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고, 숨소리마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은빛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빛나던 힐라리오 신부님이 계신 성당이었습니다. 교중미사를 드린 뒤 신부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신부님의 눈빛은 마치 오래전부터 제 사정을 알고 계셨던 듯, 깊고 따뜻했습니다. 미사가 끝난 뒤, 신부님은 커다란 비닐봉지를 가져오셨습니다. 사제관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과자, 초콜릿, 주스를 하나씩 꺼내 품에 안겨 주셨습니다.
“이것도 가져가요.”
하시며 루르드 성지의 성수, 묵주, 천지창조 액자, 우산까지 좋은 것들을 아낌없이 건네셨습니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주변을 둘러보시더니 책도 몇 권 챙겨 주셨습니다. 마치 더 줄 것이 없나 찾아보듯, 친절은 몇 번이고 이어졌습니다. 그 모든 것보다 마음을 울린 건, 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함께 걱정해 주던 그 기도의 눈빛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산을 걸을 때면 손에는 늘 그 묵주가 들려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에 오르는 순간부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처럼 그 기도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던 제가, 이제는 하루도 빠짐없이 묵주를 들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숨 쉬듯 당연하게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힘들고 아픈 생각이 찾아올 때마다 묵주 알을 하나씩 넘기며 기도했고, 그 시간이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산, 맨발 걷기, 묵주기도가 하루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했고, 살아가는 법도, 육아도 서툴렀습니다. 그저 모르는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산에서 묵주와 함께 버텼습니다.
첫째 요한이가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을 맞았을 때,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면 3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산에 올랐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 아이와 하루 두 장씩 학습지를 풀었습니다. 학원에는 보내지 않고,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아이도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꼭 필요했습니다.
학습지 두 장과 영어 원서 한 챕터 읽기. 영어는 ABC부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원서 음원을 들려주며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저는 믿었습니다.
‘매일 꾸준히 하면, 건강도, 학습도, 영어 실력도 조금씩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래서 생활 패턴을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충분히 자고 일어나, 든든히 식사하고, 산에 다녀오기. 집에 돌아와 학습지 두 장 풀기. 영어 원서 한 챕터 보기. 누구에게 자랑하려고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매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블로그에 기록했습니다. 방문자는 많지 않았고, 수입도 없었지만, 삶의 기록을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스스로 원서를 펼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 반복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산에서의 걸음, 묵주기도, 학습지 두 장. 겉으로는 단순한 일상이었지만, 그것은 저와 아이의 마음과 몸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압니다. 기도는 하늘에만 닿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도 닿는다는 것을. 묵주는 하늘과 연결시키는 지팡이이자,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우리는 종종 삶의 변화를 거대한 사건이나 특별한 계기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바꾸는 것은 거창한 시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작고 꾸준한 행동입니다. 하루 한 번의 기도, 산에서의 한 걸음, 아이와 함께한 짧은 공부 시간처럼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단단해지고 흔들림을 견디는 힘을 얻게 됩니다. 지금 마음속에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거창한 계획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한 가지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한 알의 묵주가, 한 걸음이, 당신의 내일을 바꾸는 씨앗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