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되찾다, 나로 살아가는 힘

1. 나는 엄마이기 전에 나였습니다

by 오늘도책한잔

서른 살,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알지 못했지만, 이 사람과 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를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하는 일은 단순히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신혼 초, 주례를 맡으셨던 신부님께서 신혼집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로니카, 지금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세요. 그래야 삶이 힘들 때, 그 행복을 꺼내 버틸 수 있습니다.”
그 말의 깊은 의미를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따뜻한 조언 정도로만 기억했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결혼 안에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삶의 무게를 이미 아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혼 초에는 신부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아이가 태어나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 그리고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바로 이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고, 함께 고통을 견디며 우리는 부부이자 동반자, 서로의 가장 든든한 지지대가 되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위기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부릅니다. 극심한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이전보다 더 강해지고, 삶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큰 전환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역할 전환(Role Transition)’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이전과 다른 강인함을 얻게 됩니다. 저 역시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허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했지만, 기둥을 잡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누워 있던 사람이 홀로 걷고, 손에 걸레를 쥐고 창틀을 닦는 순간,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쇠가 불과 망치를 거쳐 단단해지듯, 육체적 고통과 생활의 어려움이 단련시킨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농로를 걸었고, 숲 속을 맨발로 걸으면서 ‘엄마’라는 이름 속에 묻혀 있던 ‘나’를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속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품었던 꿈, 스무 살 무렵 직장 생활을 하며 배우기 시작했던 그림은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멈춰 있었지만, 암 수술을 마친 뒤 문화센터에서 만난 화가 선생님의 한마디가 다시 불씨를 살렸습니다.
“앉아서 그림 그려.”
그 말에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두 아이를 봐주시며 시간을 내어주신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그림은 삶의 중심에서 멀어지기도 했지만, 열정만큼은 한 번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찾고, 월간 미술 잡지를 구독하며 끊임없이 관심을 이어갔습니다. 예술심리학에서는 이를 ‘창의적 정체성(Creative Identity)’이라 합니다. 일과 가정,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사람을 지탱하는 내면의 자산이 되는 것이죠.
여전히 엄마로 살아가지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뇝니다.
'언젠가는 다시 그림을 그리리라.'
매일 산을 오르며 생각했습니다. 그날이 멀지 않다는 것을, 언젠가가 아니라 곧 찾아올 것임을.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우리는 종종 ‘엄마’나 ‘아빠’라는 이름 뒤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과 열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건강한 부모의 모습입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성인기의 중요한 과업으로 ‘자아 정체성 유지’를 꼽았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나도 나답게 살아도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결국 좋은 부모란 자신을 잃지 않는 부모이며, 나를 지키는 것이 곧 가족을 지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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