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이사 온 후,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늘 그림을 향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구름이 모양을 바꿀 때마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볼 때마다, ‘이걸 캔버스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붓을 들지 못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산에 다녀오면 하루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전원의 삶에서는 냄새 진하게 배어나는 유화가 참 잘 어울리지만, 유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필요했습니다. 유화 물감을 짜고, 두터운 물감을 덧칠하고, 마르고 나면 또 덧칠하는 과정은, 의자에 앉아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산을 오르는 것만큼의 힘을 요구했습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제게는 시작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울, 과천, 대전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순회 전시를 한다는 소식에, 가족과 함께 감상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서울 삼청동 현대미술관에서 본 이중섭 화가는, 잊지 못할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특히 은박지화 속 아이의 발가락 표현은 마음을 단번에 흔들어 놓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발가락에 대한 애틋함—그 작고 부드러운 존재를 어루만지고 싶은 마음—그 감정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과천 현대미술관에서는 모네, 피카소 등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거친 붓질과 두터운 유화의 질감이 제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그때 남편이 불쑥 말했습니다.
“당신, 다시 그림 시작해 보는 게 어때?”
“내가? 무슨… 됐어.”
말로는 손사래를 쳤지만, 가슴속에서는 방망이질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날, 화가 선생님이 계신 문화센터로 향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문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몸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 링거를 맞으며 누워 있었습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링거 방울을 바라보니, 가슴속에도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픈 제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나 컸습니다. 실망감은 회복 속도마저 늦춰 버렸습니다. 결국 화가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선생님, 그림 그리러 못 갈 것 같아요.”
“한 번만 더 나와보고 결정하면 안 될까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토요일, 화실로 나올 수 있어요?”
토요일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날이었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토요일에 내가 화실 데려다줄게. 애들은 내가 볼고.”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선생님의 거듭된 설득에 결국 마음이 열렸습니다. 먼지 쌓인 화구를 꺼내 챙기며, 그동안 닫혀 있던 마음속 문도 서서히 열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러 가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오던 ‘나의 시간’을 되찾는 날이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허락해 준 귀한 시간,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꿈을 다시 시작하는 시간, 그리고 인생의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이야기
우리는 종종 ‘해야 할 일’에 묻혀 ‘하고 싶은 일’을 미루며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이 늘어날수록, 꿈을 향한 발걸음은 더디고 조심스러워집니다. 하지만 그 꿈이야말로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숨결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마음속에도 먼지 쌓인 화구 같은 것이 있나요? 그것이 책이든, 악기든, 운동화든, 혹은 오래전 포기한 무엇이든, 언젠가 다시 꺼내 들 날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날을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