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일상이 깨졌다. 본래의 학사일정대로라면 이미 학기의 3분의 1을 마쳐가는 시점이어야 하건만 개강은 늦춰졌고 실시간 강의를 하지 않으시는 이상 교수님의 얼굴도 모른다. 기존에 잡혀있던 실습과 교육 일정이 모두 미뤄지기만 해서 한 치 앞의 스케줄도 예측할 수 없다.
MBTI 검사를 하면 P성향과 J성향 수치가 비슷하여 나름대로 융통성 있고 균형 있게 삶을 꾸려간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같은 기약 없는 혼란 속에서는 스트레스만 늘어난다.
결국 글도 못 쓰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시국이 편안할 때만 글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한국문학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문인들은 오히려 어려운 시기에 글로 시대를 비판하고 자신의 애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글은 외적 현실이 편하다고 해서 잘 써지고 그렇지 않대서 안 써지지 않는다. 그저 모습이 달라질 뿐이다.
하지만 나는 평소 그렇게 굳건하고 단단한 필자가 아니었으므로 일상이 흔들리니 멘털도 팔랑팔랑 흔들리고 꾸준히 글을 쓰자는 다짐도 팔랑팔랑 흔들린다. 의료진으로 최전선에서 싸우지 않으면서도, 이웃 작가님들처럼 외국에서 더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생활 전반이 붕괴될 만큼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작은 불편들에 흔들리고 있다
감성이 문제였다
'글'이라고 하면 '감성'만을 내세우는 양상을 달가워하지도 않고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글들이 죄다 감성 일변도로 흐를 경우 특정 형태의 글만 양산되고 읽힌다. 창작되고 읽혀야 할 글은 감성적인 글만은 아니다. 이와 같은 논리로 단지 '글을 쓴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그 앞에 '감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글의 성격을 따져봐야지 '글=감성'이란 도식은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아닌 척 실컷 떠들었지만 사실 내 글은 감성에 가깝다. 사근사근 포근포근하지는 않으니 감정이라고 하자. 그동안 나는 휘몰아치고 때론 잠잠해지며 흐르는 감정의 강물을 그대로 두고 보다가 어느 한순간을 포착해 글을 썼다. 글이 감정적이라기보다 감정 촉발이 글의 동기가 되었다. 이렇듯 감정에서 촉발된 글이 많았기에 요즘에 글 쓰는 일이 힘들다. 외부 사정이 어지러우니 내면이 어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고 눈앞의 일에만 급급하여 피로감과 혼란 짜증이라는 감정만 올라온다.
글은 쓰고 싶은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새벽 3시까지도 쓰고 싶은 마음이나 가닥이 잡히지 않아 푸념을 늘어놓듯 주절거렸다. 물론 내 이런 푸념도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임을,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사활을 다투는 이가 훨씬 많으며 그들 앞에서는 푸념도 사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부디 세계 구성원들이 특히 사심을 좀 더 보태서 브런치 작가님들이 무사히 이 난관을 극복하면 좋겠다. 의료계에 계신 분들, 해외에 계시는 분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어떤 일상의 깨짐을 맞이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이 말이다.
ps. 그러고 보니 꼭 이러려던 건 아닌데 제 브런치에 코로나 글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군요. 심지어 초기의 저는 '코로나 글은 쓰지 않겠다'고까지 했었는데 말이죠.